"그래,우리는 핵무기를 개발하고있다!"
"우리는 십년전부터 핵무기는 단 한 개도 만들거나 가져본 적이 없다"

앞의 말은 북한이 미국에게 한 말이고,뒤의 말은 이라크가 미국과 국제사회에 한 말입니다.한과 이라크,두나라중 어느쪽이 미국 입장에서 더 위험할까요.당연히 북한이겠지요.

그런데 미국은 이라크에 대해서는 '이르면 다음달초'라고 날자까지 명시하면서 전쟁을 서두르는 반면 북한에 대해서는 전쟁 대신 외교로 해결한다는 말만 되풀이하고있어요.참 이해하기 어렵죠?

이런 질문에 미국신문 위싱턴 포스트가 20일 그럴듯한 해답을 내놨어요.휴전선으로부터 불과 수십km밖에 떨어지지않은 지점에 서울이 자리잡고있다는 사실 때문에 미국이 북한에 꼼짝못하고있다는 것이죠.북한은 휴전선에 엄청난 군사력을 배치시켜놓고있지요.북한군의 총병력 1백만명중 70%가 휴전선 인근에 몰려있고 이들은 8천문의 대포와 2천대의 탱크로 무장하고있대요.

또 5백문의 1백70밀리 '곡산'포와 2백문의 다연발 로켓포들도 휴전선에 배치돼 서울을 사정거리안에 두고있다는 군요.만일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면 북한은 이처럼 엄청난 군사력으로 즉각 서울에 치명적 보복을 가할 수 있어요.반대로 북한의 수도 평양은 휴전선에서 2백km나 떨어져있어 서울만큼 위험한 위치에 있진 않아요.

신문은 이때문에 미국은 서울이 큰 손실을 입는 것을 각오하지않는한 북한을 먼저 공격할 수 없는 입장이며,북한은 이를 최대한 이용해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고있다고 지적합니다.신문은 븍한의 이같은 자세를 '근접성의 독재(Tyranny of Proximity)'라고 이름붙였어요.

이를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볼까요.신문은 만일 미국이 이런 위험을 무릅쓰고 북한을 공격하면 양쪽에서 1백만명이 숨지고,미국은 무려 1조달러(1천2백조원)의 경제적 손실을 입을 것이라고 예측했어요.이것은 1994년 주한미군 사령관을 지낸 개리 럭(Luck)이란 사람이 계산한 결과를 토대로 한 것입니다.

미국은 또 북한이 산이 많아 작전이 힘들고 북한군의 전투능력이 대단히 탁월하다는 점도 부담스러워하고있어요.전국토가 사막이어서 적들의 움직임이 환히 드러나고 병사들의 전투능력도 눈에 띄게 떨어지는 이라크와는 전혀 다르다고 보는 것이죠.

나아가 미국은 북한이 1백기의 로동미사일로 일본까지 공격할 수 있고 알래스카와 로스앤젤레스 등 미국 서해까지 도달할 수 있는 장거리 대포동 2호 미사일도 이미 갖고있거나 개발중이라고 믿고있어요.이렇게 미 본토까지 공격할 수 있는 무기를 보유한 제3 세계 국가는 북한이 처음이라는군요.

게다가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중"이라는 말과 달리 이미 몇개의 핵폭탄을 갖고있을 것이라는 게 미국의 생각입니다.만일 북한이 핵폭탄을 갖고있다면 미국으로서는 더더욱 북한을 공격하기 어려워져요.북한이 핵폭탄을 터뜨리면 한국은 물론 일본을 비롯해 동북아시아의 모든 국가들이 파멸적인 상황을 맞게되고 미국의 대 동북아시아 정책은 근본적으로 수정돼야할 것이예요.

이런 이유 때문에 미국은 북한을 함부로 공격할 수 없다는 것이 신문의 결론이예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할 수 있을까요?미국은 '손보기쉬운'이라크는 명분도 이유도 불분명한 공격을 마구잡이로 할 수 있고 '손보기어려운 힘든 상대'인 북한은 공격 명분이 분명한데도(핵무기를 개발중이라고 시인했으니까) 의도적으로 공격을 꺼리고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습니다.이렇게 국제정치는 철저히 실리로 움직이는 구조입니다.자신에게 당장 이익이 되고 실현가능한 사안은 명분이 없더라도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반면 아무리 명분이 좋더라도 당장 자신에게 불리한 사안은 외면하는 것,이것이 국제정치입니다.미국은 이라크와 북한에 대한 대조적인 자세를 통해 그 분명한 예를 보여주고있지요.

강찬호 기자stoncold@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