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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3.06. 1743호

[수석 졸업자들의 세계] 특이한 수석 졸업자들

●성균관대 인문학부 정재환씨



주경야독으로 3년 만에 조기 수석

“교실에 앉아있는 시간이 가장 행복합니다. 물론 시험은 제게도 심한 스트레스를 주죠. 시험 기간 중에는 하루 15시간 이상 공부한 적도 있습니다. 시험만 없으면 대학은 천국인데요. 하하.”

성균관대 인문학부 수석 졸업자인 개그맨 겸 MC 정재환(丁在奐ㆍ42)씨. 그는 사학을 전공해서 4.5점 만점에 4.32점을 얻었고 3년 만에 조기 졸업했다. 나이는 42세. 학업성적 우수자 겸 만학도로 ‘대통령상’도 받았다.

공부만 열심히 한 것이 아니었다. 매일 아침 9시부터 10시30분까지 CBS FM ‘정재환의 행복을 찾습니다’를 진행하고, SBS TV ‘도전 1000곡’ MC를 맡고 있으며 한글문화연대 부대표로 활동 중이다. 3년 내내 받은 장학금은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학기마다 전액 반납했다. 3년 간 결석은 딱 두 번뿐.

“지방 출장과 리포트 제출 마감이 겹치면 PC방에서 리포트를 전송하기도 했죠. 1년에 한 번씩 B+를 받았는데 1학년 때는 정말 억울해서 잠이 안 오더라고요.”

출석률과 수업태도가 좋다보니 시험 때마다 그의 노트는 ‘모범답안’으로 불리며 학생들 사이에서 복사됐다. 주로 집에서 공부하지만 어쩌다가 도서관에 자리를 잡으면 음료수와 함께 ‘열심히 하세요’라는 메모가 놓여있기도 했단다.

정씨가 대학생활을 하면서 아쉬웠던 것은 동료 학생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 것이다. 자신이 산파역을 맡은 성균관대 한글문화연대 ‘모꼬지(MT)’는 세 번 간 적이 있지만 항상 시간에 쫓겨 학생들과 함께 대화하는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교수가 꿈이기에 더욱 아쉽다고 한다.

대학원에서 한국 근현대사를 전공하게 된 정씨의 학부 논문 제목은 ‘조선어학회 사건 발생의 필연성에 관한 고찰’. “대학원에서 식민지 때 일제의 국어말살 정책과 그에 맞섰던 민족지사들의 국어수호 운동을 연구할 계획입니다.”

서울공고 2학년 중퇴 후 검정고시를 거쳐 1982년 한국외국어대 마인(馬印)어과에 합격했다가 군대와 방송출연 문제로 자퇴한 정재환씨는 대학생활과 교수의 꿈을 버리지 않고 2000년 성균관대 사학과에 입학했었다.

(서일호 주간조선 기자 ihseo@chosun.com)

● 한림대 이혜연씨

유전공학 전공 빠지며 우등생으로 변신

한림대를 전체수석으로 졸업한 이혜연 (22·李慧)씨는 여고시절 때만 해도 공부는 잘 하지 못한 평범한 학생이었다. 성적이 그저 중간급을 약간 상회할 정도였고 책상 앞에 앉는 시간보다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과자봉지를 옆에 끼고는 헤드폰을 쓰고 음악감상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

그녀는 “고3 때 벼락공부로 어느 정도 성적을 끌어올리기는 했지만 아버지가 그토록 바라던 ○○대학 의대를 가기에는 성적이 모자랐다”고 했다. 그랬던 학생이 대학 4년 평균 평점 4.33을 기록했다. 어떻게 이런 변신에 성공한 걸까?

그녀는 2학년에 진학하면서 유전공학과를 선택한 후 학업에 푹 빠져든 전형적인 ‘늦공부파’. “연구실에서 실험하는 게 그렇게 흥미로울 수가 없었어요. 수업이 끝나고 나면 남은 시간 거의 대부분을 실험실에서 보냈죠.”

그녀는 “지난 3년 간의 취미는 실험이었다”고 했다. 그녀의 얘기를 듣다보면 학과 선택이 대학생활을 얼마만큼 좌지우지하는 건지를 절감하게 된다.

“평소 평범하게 보아왔던 생명체의 신비를 알게 됐고 DNA를 조작하면 어떤 반응이 일어나는가를 시간을 두고 살피는 게 추리소설을 읽는 것보다 더 재미있었어요.”

때마침 복제양 탄생으로 이 분야에 대한 관심이 전세계적으로 증폭될 때여서 호기심을 해결하느라 분주했었다는 그녀는 173㎝의 큰 키로 건강상태에 대해서도 자신만만했다.

(춘천=김창우 조선일보 사회부 차장 cwkim@chosun.com)

● 이화여대 차지은씨

5년 유학비 받은 4년 장학생

이화여대 수석 졸업자 차지은(車知恩ㆍ23)씨는 다른 학교 수석 졸업자들보다 여유있게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 서울과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9년 건축학과에 입학한 차씨는 이대에서 파격적으로 마련한 ‘21세기 지도자 장학금’ 수혜자 6명 중 1명.

‘21세기 지도자 장학금’은 학업성적이 뛰어나고 장차 지도자로서 성장할 자질이 엿보이는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입학(대학원 석·박사 포함)시 기숙사 제공과 면학장학금을 지급하고 4년 간 등록금 및 수업료를 전액 면제해준다. 그리고 해외 유학을 5년 간 지원해준다. 일단 이대 건축학과 대학원에 진학한 차씨는 해외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 그녀의 꿈은 교수 겸 건축가.

“1, 2학년 때 유럽 배낭여행 중에 전통있고 개성있는 건물들을 보고 너무 놀랐어요. 특히 스페인에서 제가 좋아하는 가우디의 건축물들을 보고 반했습니다. 한국의 시멘트 건물들과는 전혀 다른 것들이었죠. 앞으로 한국 건축 발전에 일익을 담당하는 학자, 건축가가 되고 싶어요. 제 꿈을 펼칠 수 있는 길을 마련해준 학교에도 감사하고요.”

(서일호 주간조선 기자 ihseo@chosun.com)

●한국과학기술원 박범수씨

“벤처기업에서 이론 검증 후 유학”

“일선 현장에서 이론을 검증하는 시간을 갖고 싶었습니다.”

과학영재의 요람 한국과학기술원(KAIST)을 수석 졸업한 박범수씨는 올 1월 초부터 분당에 있는 ‘위다스’라는 벤처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위다스는 이동통신 중계기를 만드는 회사로 1996년 설립돼 80여명의 직원이 일하는 건실한 업체다.

박씨는 “일단 회사에서 3~4년 현장경험을 쌓은 뒤 유학을 가 ‘재미있는 공부’에 전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관련 분야에서 세계 최고로 꼽히는 미국 MIT나 스탠퍼드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연구원이나 대학교수로 일한다는 생각이다.

국내파인 박씨는 해외 유학을 위해 영어에 시간을 많이 할애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회화 공부를 한 것은 대학 3학년 초. 인터넷을 이용해 영어 뉴스를 꾸준히 들었다. 또 평소 실내에서 영어로 생각하고 밖에 나가선 눈앞에 보이는 것으로 가상 상황을 설정해 혼자 영어로 표현하는 연습을 했다. 덕분에 외국인과 영어로 대화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고 한다.

(대전=임도혁 사회부 차장대우 dhim@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