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때 친구들이 반 일기장에다가
언어영역에 나오는 시들을 많이 패러디했었다
다시 수능 때가 되구 하니까 그 때가 생각나서...
지금 다시 읽어보니 그 때가 그립긴 하다.
당시에는 참 절박한 심정들이었을텐데...

*서시*

하교 시간까지 형광등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칠판에 날리는 분필가루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수능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모든 포기했던 과목들을 다시 봐야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아직 방불 끌 때가 아닙니다*

아직 방불 끌 때가 아닙니다.
독서실에서는 우리의 어린 양들이 낡은 갈색 챙삭에 앉아서
남은 시간을 고뇌하느라고 집에 안가고
조용한 들판에는 인제야 새벽 안개가 자욱이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아직 방불을 끌 때가 아닙니다.
친구들이 고요히 명상하는 얼굴이 멀어지지 않고
눈 앞의 아파트에서는 새벽을 끌고 오는
그 누런 책장이 비치는 소리가
들려하지 않습니까.

*미치겠어요*

답도 못쓴 답안지에 빗금의 파문을 내며 줄줄이 그어지는 사선은
누구의 비애입니까?
답안지 한쪽 끝에 소나기가 그칠 즈음 무서운 빨간 사선의 터진 틈으로
언뜻 언뜻 보이는 동그라미는 누구의 환호성입니까?
가지 없는 길다란 나무에 푸른 테이프를 감아서 복도의 무거운 공기를 가르는
알 수 없는 매는 누구의 사랑입니까?
근원도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복도를 울리고 가는게 흐르는 작은 비명은
굽이 굽이 누구의 한탄입니까?
군살배긴 앞꿈치로 차가운 바닥을 딛고 시커먼 손으로 무거운 몸을 지탱하면서
떨어지는 매의 개수를 세는 목소리는 누구의 비명입니까?
한번 틀린 것은 다신 틀리지 않습니다.
그칠 줄 모르고 맞는 나의 엉덩이는 누가 만든 제도의 희생양입니까?

*高三圖(제1호)
13인의고삼이도로를질주하오.
(길은수능셤장가는데가적당하오)

제1의고삼이무섭다고그리오.
제2의고삼도무섭다고그리오.
제3의고삼도무섭다고그리오.
제4의고삼도무섭다고그리오.
제5의고삼도무섭다고그리오.
제6의고삼도무섭다고그리오.
제7의고삼도무섭다고그리오.
제8의고삼도무섭다고그리오.
제9의고삼도무섭다고그리오.
제10의고삼도무섭다고그리오.

제11의고삼도무섭다고그리오.
제12의고삼도무섭다고그리오.
제13의고삼도무섭다고그리오.
13인의고삼은무서운고삼과무서워하는고삼과그렇게뿐모였소.
(다른사정은없는 것이차라리나았소)

그중에1인의고삼이무서운고삼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고삼이무서운고삼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고삼이무서워하는고삼이라도좋소.
그중에1인의고삼이무서워하는고삼이라도좋소.

(길은수능셤장안이라도적당하오.)
13인의고삼이도로를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

원작: 이상, 『烏瞰圖』

*시조*
(우리 학교는 참 이상했다. 여자는 두발자유였는데
남자 머리만은 철저히 검사했었다.
학년별로 허용하는 길이가 달랐음 ^^
3학년은 5센치까지 봐줌...)

이머리 잘리고 잘리어 일백번 고쳐 잘려서
스포츠가 삭발되어 소림사 중 된다해도
장발향한 일편단심 가실 줄이 있사오랴.

*또 다른 서시*

걸리는 날까지 선생님을 우러러
한 점 흔들림이 없기를
자꾸만 떨궈지는 고개에
나는 괴로워했다.
잠을 찬양하는 마음으로
모든 잠든 이를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잠을
청해야겠다.

오늘 수업시간에도 침이 공책에 스며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