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주철환 교수<전MBC PD>는 교양과목 '매스콤과 사회'를 강의하면서 독특한 숙제를 냈다. '유언 쓰기'. 오마이뉴스는 주 교수의 동의아래 과제로 제출된 스무살의 유언 모두인 208장을 정독할 수 있었다. 스무살의 여대생들은 죽음 앞에서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나. 스무살의 유언장들에 나타난 우리 사회의 모습은? <오마이뉴스>는 유서 몇개를 뽑아 학생들의 동의를 얻었다. 다음은 같이 보고 싶은 유서이다.....편집자 주)


널 사랑한다는 말 아직 하지 못했는데

00학과 신00


○○에게
나 죽는다.

이렇게 간단하게 말해서.. 놀랬지?
우리가 친구로 지낸지 6년째던가?
중간에 네가 여자친구 생기는 바람에 나한테 관심 못 가져 준 1년 빼고는 그래도 우리 그런대로 친한 친구사이였잖아. 그래서 그럴거야. 내가 죽는데 가장 먼저 네 생각이 났어. 그리고 이렇게 덤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고.

솔직히 조금은 슬프다. 나 지금 죽어도 될 만큼 열심히 사랑하지도 못했고, 열심히 살지도 못했는데 말이야. 딱 한번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사랑한다'라고 말해본 것 그게 전부인데 말이야.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조금 서글퍼.

사는 것이 얼마나 기쁜지 이제야 조금 알았는데 말이다.
매일 아침 눈을 떠서 졸린 눈으로 잠에서 깨어나려고 이불을 개는 것.
아침에 세수할 때 비누 거품을 내면서 거품에서 나는 좋은 냄새를 맡는 것.
나를 못살게 굴지만 내 말을 잘 따라주는 과외하는 애와 매일 아침밥을 같이 먹는 것.

전철역까지 가는 길에 가끔 마주치는 11층 남자애 - 내 눈을 즐겁게 하거든.
길 다니는 내내 내 귀를 즐겁게 해주는 음악들.(핑크 플로이드, 킹 크림슨)
수업 안 들어온다고 벌금까지 매기면서 전화해 주는 친구들.
학교를 올라갈 때 유난히 넓은 내 이마에서 흐르는 땀들.
그리고 그 땀을 닦기 위해 항상 준비된 내 손수건.

가끔은 아침 일찍 전화하셔서 아직 일어나지도 않았냐구 나무라시는 우리 아빠.
이런 것들이 날 행복하게 한다는 것을 이제서야 겨우 알았는데 말이야.
이제 이런 것들을 만나지 못한다는 것이 조금 슬퍼.
그리고 너도 알지?
나 너 주려고 만드는 십자수 말이야. 나 그것도 다 못했어.
얼른 만들어서 너에게 안겨주려 했는데 말이야.
가끔 찾아가던 인사동의 전통 찻집...

나도 그곳에 있는 주인 아줌마처럼 늙고 싶어 했잖아. 그리고 너는 할아버지가 되어서 날 찾아오고 말이야.
그러한 것들이 날 행복하게 해주었는데 말이야.
이런 것들과 함께 할 수 없음이 .. 그것이 날 슬프게 한다.
근데 무엇보다 슬픈 것은 말이야.

이런 것들을 너와 함께 해와서 더 행복했고, 그리고 끝까지 함께 하고 싶었는데..
예쁘게 사랑해 주고 싶다고.. 나 그 말도 아직 못했는데 어쩌지?
6년 동안 살아오면서 느끼던 마음과 마음의 통함.. 나 그것 느꼈다고 아직 너에게 말하지 못했는데.....
내가 널 사랑한다는 것 그거 아직 말하지 못했는데.....
사실 평생 절대로 말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인데, 그냥 좋은 친구로 남으려고 했었는데 말이야.
죽기 전에 말하고 싶어.

너무 늦은 것 같지만 내가 널 사랑해도 될까?
다른 세상에 있지만 거기서 너 사랑해도 되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