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을 올렸습니다. 경제와사회는 미리 올렸고 다세는 성적제출마감이 5일이나 지난 오늘에야 올렸습니다. 이제 당분간 강의를 접게 되므로 몇 가지 소감이나 적으려 합니다. 또, 성적이 나쁘게 나온 몇몇 학생들에게 제 나름대로의 설명과 위로를 드리고도 싶습니다.

적어도 앞으로 1년은 강의를 하지 않기 때문에 가급적 이번 학기는 성적을 잘 주려고 노력했지만 (실제, 남보다 잘 주었고 당연히 사유서를 썼습니다) 어차피 한계는 있는 것이고...따라서, 불만이 있는 학생들도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 나름대로 고심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채점은 공정하게 하자고 결심을 했습니다 (당연한 일을 결심하다니!!)

경제와 사회는 워낙 객관식/단답형이라 채점상의 오류가 있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대신 합산 이런 것들은 조교를 시켜 여러번 확인 했습니다); 다세의 경우도 주관식이긴 하지만 채점의 자의성을 줄이려고 거의 대부분 2점이나 3점 단위로 분할해 채점했습니다. 이런 지침을 가지고 너무 명백한 답은 일부 대학원생 조교가 먼저 가채점을 했습니다. 그러나 제 자신 못 미더워 지난 2-3일 꼬박 걸려 기말은 물론 중간고사까지 다시 직접 채점을 했습니다 어떤 문제는 몇 번씩 재채점을 했습니다.

다세의 경우 주관식이므로 자신은 자신있게 썼다고 보지만 실제 성적은 낮을수 있습니다 수업도 안빠지고, 농담도 기억하고...억울하다고 느끼시겠지만 성적은 공정하게 나갔다는 점을 이해해 주십시오. 사실 오늘까지 버티며 학점 한계를 조금이라도 더 늘이려고 행정실, 학적과와 재상의를 했지만 제 욕심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준 성적이 .. 평균적으로 매우 후한 것이라는 것은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A+B 합쳐 이정도면 사실 많이 준 것입니다...플러스사인도 남발했고..)

강의도 널널하게 한 교수에게 성적까지 낮게 받았다고 못마땅한 학생들도 있겠지만...한번 자신들이 얼마나 공부에 투자했는지도 생각해보라 권하고 싶습니다. 강의 성격상 시시콜콜한 주문사항은 적었지만, 다세는 이것 저것 평소에 생각해볼 거리가 많은 과목입니다. 또 그렇게 노력한 학생들이 성적을 잘 받도록 시험도 냈습니다. 여러분들이 원했으면 훨씬 더 많은 강의내용과 Reading을 제공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수업 중 틈만 나면 그만해요, 휴강해요를 외치는 분위기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많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말해, 저는 이런식으로 학기말에 학교와 아귀다툼 하는 것에 지친지 오랩니다. 학생들은 학기초에 수강신청으로 혼을 빼고, 선생은 제 소신껏 성적을 주지 못하는 분위기에서 강의한다는 것이 그리 유쾌한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전에는 학생들을 위한 일이라면 제 신상에 손해가 가더라도 최선을 다해보려고 했는데...요즘은 별로 그런 기분이 들지 않습니다. 사석은 물론, 몇차례 공식석상에서 상대평가폐지론을 들고 나오다 학교 당국자의 반발을 산일, 학교의 주인은 학생/교수인데 왜 주인의 심부름꾼인 일부 보직교수들이 마치 "기업"의 "간부"처럼 행세하느냐 라고 말하다 온갖 나쁜 말을 다 듣기도 했고..억울한 학생을 도둑으로 내모는 교수들과 학교당국을 보고 참기 힘들어 거의 양심선언에 가까운 방식으로 애걸복걸 해보았던 기억 등...이러다 보니 없는 얘기들까지 덧부쳐 나를 험담하는 얘기들도 들리고...

그래도 그 때는 대다수 학생들이 믿어주고 따라주어 힘이 되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솔직히 내가 뭐가 아쉬어 이렇게 나서서 성적을 잘 주려고 하느냐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잘되면 다 자신이 잘난 것이고, 뭐 조금이라도 못마땅하면 선생의 인격이고 뭐고 멋대로 떠들어 대는 수준의 학생들에게 굽실거리며 버터야 할 정도로 제가 그동안 이 학교에서 엉터리로 강의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학교도 좀 딱합니다. 규정은 못마땅해도 지켜야 한다는 것은 이해 합니다. 그러나 학교는 장사하는 기업체가 아닙니다. 그래도 전에는 학점 관계로 교무과 직원에게 전화하면 서로 웃으며 피차의 사정얘기도 들어주고, 또 서로 "좀 봐달라" 하는 식으로 밀고 밀치는 낭만이라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직원들이 너무 사무적이라 말 붙이기도 어렵습니다. (그래도 교수가 전화하는데..어떤 때는 무슨 책장사가 전화한 것처럼 취급 받을 때도 있습니다...대체 제가 왜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요)

얘기가 빗나가지만 학교는 좀 달라야 하는 것 아닙니까...얼마전 어떤 노 교수님이 저보고...술집도 옜날과 많이 달라졌다..전에는 돈이 없이 가도..공부한 사람이라고 마담이 봐주기도 하고, 멋들어진 얘기하면 아가씨가 정도 주고 했는데(으윽! 이런 멋진 일이..), 요즘은 술집서 사람을 재는 척도가 그저 "돈"이니 술맛이 나지 않는 다군요...저는 그런 술집에 거의 가지 않으므로 무슨 얘기하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이 예를 어쩌면 학교에 비유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캠퍼스에 낭만이 식어가는 것은 사실인 것 같고...진정한 자유와 비판정신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옹졸한 인생들만 득실거리며 가르친다 배운다 21세기다 지식인이다 나잘낫다 떠들고 다니는 현실이 슬프기도 하고..아마 제가 대학사계 연재를 중단한 이유가 이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내년도에 강의를 안한다는 게 서운하다기 보다는 시원하다는 솔직한 생각이 드는 것에 제 자신도 놀랍니다. 그동안 이 숨막히는 분위게에서 그나마 버티어왔던 것은 간혹, 성적은 나쁘게 받았지만 강의에 만족한다는 소수의 학생들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 열심히 했는데, 성적이 너무 안좋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언제라도 찾아 오십시오. 제가 시험 답안을 직접 설명해 드리지요. 아울러 제가 다른 방식으로 도와드릴 수 있는 방법이 무었인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물론 학점을 정정할 확률은 제로에 가깝습니다. 이번 경우 워낙 꼼꼼히 채점을 했으므로)

제발, 성적 좋다고 글 올리지 말고 (다른 사람들 생각도 해주셔야지), 나쁘다고 여기저기 선생 죽일놈이라고 떠들고 다니지 마십시오 (할말이 있으면 떳떳하게 실명으로 이메일을 보내거나 찾아오세요)

일류로 향해가는 일은 어렵지만, 스스로를 이류나 삼류로 만드는 일은 아주 쉬운 법입니다.

당분간 강의실에서 만나지 못하더라도, 언제나 꿈과 용기를 잃지 않는 지성이 되시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