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요(友友) 마를 좋아한다. 내가 그를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95년부터이니까, 8년째 되는 셈이다.

내가 처음 듣게 된 그의 연주곡은 내가 가장 좋아하며 존경하는 작곡가 J. S. Bach(언젠가는 내가 바흐를 좋아하는 이유도 써볼 생각)의 <>(첼로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성서로 통하는 곡, 원래는 연주곡이 아닌 연습곡이었다. 각각 6개의 춤곡으로 이루어진)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힘들 때마다 이 곡을 듣곤 하는데, 급히 사느라 내 몸 어느 구석에 처박아 버린 내 구겨진 조각들을 펴보고자 할 때 주로 듣곤 한다. 사실 이 곡은 1번의 가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들으면 모두 아는 곡이다. 그런데 나머지 곡들... 특히 내 개인적으로는 2번과 4번에 실려 있는 곡들은 소화하기가 그리 싶지만은 않다. 지금도 사실 2번과 4번 듣는 것은 만만치가 않다.

앗! 다시 요요 마 얘기로 돌아오면, 그의 연주 특징은 접근하기 어려운(지겹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고 등등) 클래식컬 뮤직을 여러 사람들이 친근하게 들을 수 있게 한다는 데에 있다. 사실 이 조곡의 레코딩만 해도 파블로 카잘스, 야노스 슈타커,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 등등의 수많은 연주자들의 것이 있다(참고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의 그것은 그리 좋은 평을 받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이 가운데서 유독 요요 마의 것을 들으면 그의 연주가 편안하고 콧대 높지 않고 삶을 진솔하게 표현했으며 겸손한지 느낄 수 있다. 특히 그가 내는 첼로 현의 소리와 함께 들리는 그의 진지한 숨소리를 들으면 더욱 그러하다. 그의 연주는 듣는 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준다. 이는 첼로의 음역이 사람의 목소리가 내는 음역과 비슷하기 때문에 더욱 강하게 와 닿는다.

둘째, 많은 거장들이 신동(Wunderkind)이자 노력가인 것처럼 그 또한 타고난 재능을 방치하지 않고 끊임없이 갈고 닦는, 노력하는 인간이기에 나는 그가 좋다. 보통 우리가 신동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별 노력하지 않고 잘 나가는 사람인 줄 잘못 알고 있다. 그러나 내가 조사해 본 몇몇의 경우를 보면 그들은 어린 시절 운좋게도 하늘이 선사한 훌륭한 재능을 빨리 발휘하여 주목을 받기 시작하고, 꾸준한 노력을 통해 실력도 쌓아 간다. 이들은 99%의 영감이 있기에 어떤 음악이든 그것이 말하는 바를 빨리 캐취해 낸다(이건 단순히 이성만의 힘도 아니고 감성만의 힘도 아니다. 그건 양자가 통합되어 있는 오성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인생은 단순히 좋은 일만 일어나기엔 긴 것이다. 그런 신동 가운데서도 인생의 길고긴 고비를 잘 견딜 수 있는 자만이 마에스트로의 단계에 오른다. 난관에 봉착하면...난 천재도 신동도 아니지만, 그들의 상황을 추측해 볼 때... 빠른 배움의 속도, 자신이 宇宙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표현할 수 있는 절조 있는 능력 등등의 것이 어느 순간 저조해지면서 슬럼프가 오게 될 것이다. 보통 사춘기 시절에 나타날 것 같은데, 이때는 에디슨 아저씨가 말한 대로 1%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단 1%! 참을 忍자 세 개를 되뇔 줄 알면 되는데, 그게 참 생각보다 싶지 않다.

다섯 살에 이 곡으로 첫 연주회를 가졌을 정도였던 그에게도 슬럼프가 있었지만, 그는 잘 극복했다. 그러나 그와는 비교되는 그의 누나 위쳉 마는 3살에 데뷔했을 만치 재능이 있었으나(요요보다 더욱 많이), 사춘기 시절 그녀가 바이올린보다 피아노에 더 소질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게 되었고, 지금은 뉴욕에서 소아과 전문의를 하며 잘살고 있다 한다.

셋째, 그는 open-mind의 소유자이다. 이건 가장 포괄적인 이유이다. 그가 오픈되어 있기에, 사람들과 동물들과 자연과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감지하는 것이다. 이런 개방성은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고, 그렇기에 그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게 하고 공감할 수 있게 한다. 또한 이런 경향은 여러 장르로의 접근을 가능케 해주었다. 물론 그는 젊은 시절부터 레코딩 작업을 해왔기에 왠만한 클래시컬 뮤직을 섭렵했다는 강점이 있다. 이런 커리어가 있었기에 동양 전통 음악이며, 재즈, 탱고, 민요 등등을 그의 음악 세계에 가미시킬 수 있었다. 또한 그가 현대 음악 작곡가들에게 곡을 청탁하고 연주하는 데 힘을 기울이는 것도 가능하게 했다.

넷째, 그는 끊임없는 탐구자이다. 그는 위에 올린 기사처럼 요즘은 <실크로드 프로젝트>라는 것을 하고 있다. 그는 하버드 대에서 인류학을 전공했는데, 그의 이번 프로젝트는 인문학적 소양이 그의 음악 작업에 미친 영향을 반영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만나는 새로운 사람, 문물 사이에서 외롭기도 하고 지치기도 하지만, 그런 연구의 뒤에는 새로운 사람들과 문화가 주는 잔잔한 미소가 있다. 그런 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슴 저림이기 때문일 것 같다.

다섯째, 그는 어울림을 아는 사람이다. 그는 어울림을 잘 알고 좋아하기에 여러 연주자들과 하는 작업을 자주 한다. 이건 두 번째로 레코딩한(원래 연주자들은 한 곡을 다시 레코딩하는 것을 기피하는데, 그 이유는 그전의 연주와 비교당하기 때문이다. 더 못하다는 평 안 들으려고) 무반주 첼로를 보면 도드라진다. 빌딩 가의 공원에서 펼치는 가부키 배우와 무용수들 등등의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한 작업을 보면 그의 예술 세계를 알 수 있다. 다양한 사고관을 지닌 사람들과의 끊임없는 교류!

또한 이런 어울림은 그의 연주회에서도 드러난다. 관중들에게 조명을 비추는 것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보통의 연주회의 경우 연주자에게 스포트라이트가 가는 것을 감안해 본다면 그가 관중과의 호흡을 얼마나 중요시하는지 알 수 있다.

아, 이것 말고도 참 많은 이유 때문에 나는 그를 좋아한다. 그 가운데서도 빼놓을 수 없는 건 그의 사람좋아 보이는 얼굴이다. 이제는 그의 나이만큼이나 눈가에 주름이 잡혀 있지만(청년 시절의 모습은 순진한 미소년 그자체이다), 그 사이사이에 묻어 있는 그의 따뜻함을 보면 그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인생의 외로움 속에서도 부드러움을 잃지 않은 훈훈한 그의 미소!

사실 내가 이제껏 횡설수설하며 적은 것은 다 쓰잘데기 없는 것이다. 그의 음악을 가슴을 열고 진지하게 들어보면 되는 것이다. 난 오늘 레코드 가게에서 그의 <<애팔래치아 왈츠Appalachia Waltz>>에 수록된 을 들었는데, 그의 무르익은 성숙한 연주에 감동받았다.

p.s. 1. 위에 인터뷰 기사를 실은 이유는 재미있기 때문입니다(이 경우에는 interviewer가 가장 무난한 질문을 하고 있어서 그다지 묘미가 느껴지지 않지만, 요즘 대선주자들과의 인터뷰를 한 기사들을 볼 짝 치면 흥미진진하기 짝이 없습니다. 인터뷰어, 인터뷰이의 이리저리 찔러 보고 피해 가고자 하는 진땀 나는 노력들). 대화Dialogue라는 형식은 interviewee와 interviewer를 볼 수 있게 하기에 더욱 많은 것을 알 수 있죠. 바라봄(view)들의 사이사이(inter)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재미있기에 더욱 많이 배울 수 있게 합니다.

곁다리로 다이얼로그는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학문의 방법 가운데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여기서부터 변증법dialectic이 파생되었다고도 합니다). 플라톤이나 사서 오경 같은 글들을 읽어 보면 느껴지죠. 글구 단순히 대화로만 구성된 것은 아니지만, 삼국지 같은 걸 읽어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각각의 인물을 파악해 가며 보아야만 뜻을 이해할 수 있는 글들이죠. 결국 옛 현인들은 지식과 인간됨을 따로 보지 않았다는 말이 되겠네요.

시간이 차차 흐름에 따라 지식과 인간됨이 분리되게 되었는데, 사회 구조와 제도의 변화가 주는 영향이 컸겠죠. 이제는 그것을 추스려 가야 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더 늦기 전에. 물론 지금의 상황은 젊은이를 움츠려들게 하고 있지만, 전적으로 제도와 사회 구조의 탓으로만 몰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기성 세대가 하지 못한 것을 이어 받아서 해나가야 하는 것이 젊은 세대의 일이니까요. 여러분, 용기를 잃지 마세요!

p.s. 2. 혹시 저처럼 요요 마를 좋아하시는 분을 위해 그의 홈피 주소를 붙여 놓겠습니다.

http://www.yo-yom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