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 : 우울증으로 3년째 외부와의 접촉을 피해온 마광수씨.그는 “재임용에 탈락한 뒤로 세상이 겁나고 사람을 만나는 게 무서워졌다 ”고 말했다./黃晶恩기자


2003년 1월 28일자 조선일보


입력시간 : 01.27(월) 19:37


[사람들] 최보식의 인물기행/ 마광수 前 연세대교수


'즐거운 사라' 파문이후 은둔 3년째


"울화병 걸려… 내삶은 헝클어졌어요"




어느 날 우리 일상에서 마광수(馬光洙·52)씨가 사라졌다. 스스로 ‘광마(狂馬)’라고 일컬었듯이, 미친 말처럼 종횡했던 그의 실종으로 세상은 잠시 조용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한때 그를 비웃었던 이들조차 그의 없음으로 인한 무료함을 참기 어려웠다.


그의 아파트를 방문한 것은 주말 오후였다. 그는 사람을 피한다고 들었다. 현관문이 열렸을 때 헐렁한 잠옷 차림의 중년 사내가 무표정하게 “누구…세요?”라고 물었다. 신체의 가죽이 오그라든 것 같았다. 허연 머리의 귀퉁이에는 새집을 지었다.


그는 응접실 소파에 앉아 신경질적으로 눈을 내리 감았다. 기자가 말을 붙이자 눈을 떴다. 그는 미리 암기해놓은 듯 “난 울화병에 걸렸어요. 폐인(廢人)이 됐죠”라고 중얼거렸다.


“3년째 집 밖을 거의 나가지 않았어요. 겁이나 사람을 만날 수가 없어요. 글 한줄 쓴 적 없어요. 그렇게 친했던 동료 교수들이 나를 비방하고 따돌렸어요. 이들이 나를 몰아내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요. 나는 세상이 무서워졌어요.”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권태’ ‘즐거운 사라’를 쓴 그는 2000년 교수 재임용 심사에서 탈락됐다. 저조한 논문 실적과 품위가 문제가 됐을 것이다. 그의 항의로 유예 결정이 났지만, 그 뒤로 한 강좌를 잠시 맡았을 뿐 휴직이 계속됐다. 그는 집 안으로 숨은 것이다.


그는 길고 앙상한 손가락으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소설 ‘즐거운 사라’(1992)를 쓴 뒤로 내 삶이 모두 헝클어졌어요. 설마 나를 잡아갈 줄 몰랐죠. 이 겁 많고 여린 사람을…. 이런 한국 사회에서 글을 썼다는 걸 후회해요. 울기도 했습니다. 이로 인해 내 인생에서 40대는 암흑이 됐어요.”


그는 다리를 불안스럽게 떨며 “하지만 그때는 지금처럼 기력이 없진 않았어요”라고 말했다.


“내 작품에 대해 비방하는 이도 있었지만 나를 지지하는 이들이 더 많다고 자신했죠. 감옥에서 나온 뒤로도 많이 읽고 많이 썼어요. 하지만 바로 동료 교수들이 나를 따돌릴 줄은 몰랐어요. 이 모든 것들이 쌓여 나는 무너져버렸어요.”


기자가 교수로서의 품위를 들추자 그는 “나 같은 사람 한 명쯤 있는 걸 버려 두지 못합니까”라며 안간힘을 썼다.


“난 애초에 그런 권위를 싫어했어요. 권위를 부수려고 했으니까요. 나는 솔직합니다. 바깥으로 점잖은 체하고 안에서 바람 피우는 이중적인 짓은 하지 않아요. 내가 성(性)을 주제로 소설을 썼지만 나의 사생활이 문란하지는 않았어요.”


-- 왜 그렇게 외설적인 성(性)에만 집착했지요?


“그런 성적인 상상을 좋아했기 때문이죠. 내가 좋은 것을 표현했을 뿐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없어요. 내 자신의 욕구를 속일 수는 없는 거죠. 그렇다고 다른 사람에게 무슨 피해를 줬나요? 영화나 인터넷은 온통 야한 것인데, 왜 소설 작품만 죽이려고 들죠?”


그는 거실에 놓인 TV를 안 켠 지 3년이 됐다. 뉴스나 세상 돌아가는 소식에 관심이 없어진 것이다. 방에는 이불이 그대로 펴져 있었다. 그는 종일 방안에 멍하니 누워있다고 했다.


-- 이제 과거의 집착에서 벗어날 때도 됐지 않나요?


“나도 정말 잊고 싶지만,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몇 번 죽으려고도 했어요. 막상 죽으려니 무서웠어요. 죽을 수도 없어요. 나는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어요.”


기자가 “언제까지 집안에서 이렇게 엄살을 떨 것인가”라고 말하자, 그는 “다들 내게 외출하라고 하는데, 내가 나갈 데가 어디 있어요? 괜히 당신을 집안으로 들어오라고 했군요”라고 투정했다.


“처자식이라도 곁에 있었으면…. 이혼한 것도 후회해요. 나를 지켜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제 직업도 없고 돈도 없는 나를 누가 쳐다보겠어요. 나는 고립된 ‘왕따’죠.”


그는 “매스컴에서 찾아오고 전화를 걸어왔지만 이번이 처음 하는 인터뷰”라며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너무 두렵다”며 기자를 집 밖으로 내보냈다. 우리는 언제부터 그에게 공포의 대상이 됐던 것일까.


(사회부 차장대우 congchi@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