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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3.06. 1743호

[수석 졸업자들의 세계] 그들의 스타일·꿈·사회의식



대학 졸업 시즌이 끝났다. 사각모를 쓴 졸업생들은 저마다 부푼 꿈을 안고 상급학교에 진학하거나 사회로 진출한다. 수많은 졸업생들 가운데 특히 우뚝 솟은 수석 졸업자들. 만점에 가까운 경이로운 학점을 받으며 4년을 보낸 이들은 분명 남들과 다른 면모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주간조선 취재에 응한 올해 주요 대학 수석 졸업자 18명이 말하는 삶과 꿈은 어떤 것일까.

<< 조사대상 18명의 공통점>>

-건강관리: 주 3회 이상 운동(16명) -흡연 여부: 금연(17명) -성격: 낙천적·긍정적(15명) -출신고: 과학고(4명) -부모 직업: 교육계 종사자(8명) -부모: 모두 살아 계심(17명) -존경하는 사람: 아버지나 어머니(9명) -종교: 기독교(11명)

◈ 신상·라이프 스타일“주 3회 이상 운동… 담배 안피워” 90%

“매일 1시간씩 헬스장에서 운동합니다.” 수석 졸업자들은 대부분 건강관리를 따로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 응답자 18명 중 매일 혹은 주 3회 정도 시간을 정해놓고 달리기나 걷기,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한다는 사람이 16명이었다. 이들은 농구, 축구, 에어로빅, 수영 등 각종 운동을 대부분 겸하고 있었다. 체질적으로 운동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고려대 서어서문학과 서혜영씨는 “라틴댄스를 좋아해서 동아리 활동을 하고 합기도도 한다”고 말했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오승연씨는 에어로빅 강사 자격증을 땄고 재즈댄스와 승마를 배운다. 대학생활 중 가장 무너지기 쉬운 식사 시간을 지키는 경우도 있다. 부산대 경영학과 정우식씨는 “아침은 6시, 점심은 12시, 저녁은 5시에 먹는 것이 건강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건강이 나쁠 리 없다. 응답자 중 건강이 “매우 좋다”고 답한 사람이 10명, “좋다”가 5명, “보통”이 3명, “나쁘다”고 답한 사람은 없었다. 흡연자는 딱 한 명뿐이고 술도 “거의 못 마신다”가 대부분이다. 포항공대 산업공학과 김배호씨는 “기숙사 생활을 하다보니 동료들과 관계 때문에 가끔 마실 뿐”이라고 말했다.

●낙천적 성격, 화목한 가정

수석 졸업자들의 출신지와 고등학교 항목에서는 18명 중 4명이 과학고등학교 출신인 점이 눈에 띄었다. 가정 환경은 어떠했을까. 부모의 직업으로는 아버지나 어머니가 교수나 교사 혹은 연구원으로 교육계에 종사하는 사람이 8명, 이 밖에 회사원이나 자영업이 3명, 약사 2명, 어머니가 주부인 사람은 모두 11명이었다. 또 일찍 아버지를 여읜 한 사람을 빼고는 모두 부모가 살아 계셨다. 고려대 경영학과 서창우(경영대 수석)씨는 “부모님과 누나들의 사랑이 있어서 공부하는 데에 많은 힘이 됐다”고 말했다.

종교는 기독교가 11명으로 가장 많았다. 천주교 3명, 불교 1명, “종교가 없다”고 답한 사람은 3명이다.

수석 졸업자들은 다양한 취미를 갖고 있었다. 스키, 볼링, 댄스 등 운동뿐 아니라 음악, 영화, 낚시, 뜨개질, 중국 기사 스크랩, 참선, 피아노, 컴퓨터 게임까지 보통 두세 개씩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동국대 산림자원학과 정은영씨는 “편지나 광고 엽서, 우표, 영화 리플렛, 동전 등을 닥치는 대로 수집하는 것이 취미”라고 말했다.

스트레스가 쌓이는 경우는 “하고 싶은 것이 마음대로 안 될 때”이고 “이런 설문에 응답해야 할 때^^”라고 재치있게 답한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다수가 “스트레스를 그다지 많이 받는 편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스트레스는 주로 운동으로 푼다. 친구들과 수다를 떨거나 혼자 걷는 사람도 있었다. 제주대 언론홍보학과 김경민씨는 “드라이브로 바닷가에 간다”고 말했다.

이들의 성격은 어떨까. 응답자 15명이 “낙관적ㆍ긍정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고 답했다. 구체적으로는 “에너지가 넘친다” “다혈질” “리더형” “사람 만나기를 좋아한다”였다. 나머지 3명의 답변은 “꼼꼼하고 철저하다”다.

수석 졸업자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는 ‘부모님’을 꼽았다. 18명 중 9명이 부모님 혹은 어머니나 아버지를 가장 존경한다고 답했다. 한양대 응용화학공학부 강성석씨는 “어린 자식의 의견이라도 일단 존중해주고 더 좋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자식을 기르신 아버지가 가장 존경스럽다”고 말했다. 성균관대 유전공학과 김혜진씨도 마찬가지다. 지도 교수를 가장 존경한다는 충북대 환경공학과 김민정씨도 있었다. 나머지는 슈바이처, 정약용, 마더 테레사, 피터드러커 등의 저명인사를 꼽았다. 자신의 지식을 사회를 위해 썼다는 점을 가장 큰 존경 이유로 들었다.

감명 깊게 읽은 책을 묻는 질문에 “너무 많아서 열거하기 힘들다” “닥치는 대로 읽는다” 등으로 ‘책벌레’임을 과시한 사람은 3명이었다. 구체적인 답변으로는 ‘안네의 일기’ ‘어린왕자’ ‘무소유’ 등 인간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준 책이 많았다. 또 김경민씨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과학소설 ‘뇌’, 충남대 원예학과 이지영씨는 나관중의 ‘삼국지’,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홍성근씨는 사마천의 ‘사기’를 꼽았다. 전공 관련한 서적도 있었다. 정우식씨는 제임스 콜린스의 ‘좋은 기업을 뛰어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를, 한국과학기술원 전기 및 전자공학과 박범수씨는 로버트 액셀로드의 ‘협력의 발전(The evolution of cooperation)’을 꼽았다. 18명 중 어느 한 명도 구체적으로 책을 언급하지 못한 사람이 없었다.

(유나니 주간조선 기자 nani@chosun.com)

◈ 대학생활“좋아하는 전공 택해 맘껏 즐겼다”

“좋아하는 것이라면 잘할 수밖에 없다.”

대학 수석 졸업자들은 한 명 예외없이 전공 과목과 학교에 대해 만족하고 있었다. 오승연씨는 “전공인 국제관계, 정치외교란 말만 들어도 가슴이 뛴다”고 말했다. 전공은 다양했지만 자신의 전공을 좋아했다는 점에선 예외가 없다. 보통이라든가 불만족이란 대답은 하나도 없었다. 좋아하지 않고는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없다.

박범수씨는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이 너무 즐겁다”고 했다. 처음부터 원한 것은 아니었더라도 결국은 자신의 전공을 좋아한다. 김민정씨는 현재 전공을 택한 이유를 수능점수에 맞춘 것이라고 솔직히 털어놓는다. 그러나 지금은 전공에 만족하고 있다.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공부하는 방식이나 장소는 제각각이다. 공부 시간도 마찬가지. 홍성근씨는 “시간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하루를 노는 시간과 공부 시간으로 나눠 생각해 본 적도 없다”고 말했다. 항상 선생님,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 알고 싶은 것에 대해 묻고, 이야기를 듣고 토론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공부에 취미를 붙이고 의식, 심지어 무의식중에 얼마나 공부에 대해 고민하는가라고 생각합니다.”

김혜진씨는 홍씨와는 정반대다. 그녀는 다른 일과 공부를 병행하지 못한다. 한번 자리에 앉으면 의자와 떨어지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화장실도 목표한 곳 다 본 다음에 가야 한다”는 것이다.

공부에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만의 방법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다. 정은영씨는 “필기를 2번씩 했다”고 한다. 수업시간에 연습장에 필기를 하고 나중에 다시 그것을 노트에 옮겨 적었다.

●대부분 ‘춤’ 좋아하는 공통점 지녀

강성석씨도 머리보단 노력이라고 말했다. “많이 오래 하는 사람이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공부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어떻게 오래 꾸준히 할 수 있을까가 문제인 것 같아요.” 그는 공부를 잘하는 방법이란 오래 버티고 앉을 수 있는 방법과 같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공부는 주로 도서관과 실험실에서 한다. 물론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서혜영씨는 주로 공부한 장소가 지하철이다. “집안 형편상 아르바이트로 과외를 많이 했고 오가는 길에 책을 봤다”는 것이다.

집에서 공부했다는 사람도 상당수 있었다. 오승연씨는 집에서 공부했다. 그는 공부할 때 강의하듯 한다. 수강생은 바로 자기 자신. 마치 교수가 강의하며 교실을 오가듯이 방안을 돌아다니며 자신에게 설명을 했다. 이지영씨도 집, 내 방에서 공부하는 스타일.

요즘 젊은이들은 이성관계에 적극적이다. 수석 졸업생들이라고 공부만 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공부보단 연애라는 사람도 있다. 한 수석 졸업자는 “연애 때문에 공부에 지장이 있었던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오히려 “공부가 연애에 방해가 됐다”고 생각하고 있다.

사랑엔 그야말로 국경도 없다. 다른 한 명은 “해외 연수 길에 만난 외국인과 1년째 사귀고 있다”고 말했다.

의외로 학생들은 대부분 대학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라고 말했다. 가장 중요한 공부는 사람에 대해 배우는 것이란 이야기다. 김배호씨는 기숙사에선 절대 공부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기숙사는 동료들과 어울리고 개인 시간을 갖는 곳이란 것이다.

김경민씨는 “대학 생활에서 공부는 기본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교우관계”라고 말했다. 김민정씨도 “인간관계가 가장 중요하다”며 “대학 때 선후배 친구 교수 등 사람들과 어울리는 방법을 제대로 익혀야 한다”고 말했다. 정우식씨나 홍성근씨도 마찬가지다.

김혜진씨는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좀 더 현실적으로 설명한다. 그는 아예 공부를 잘하는 비결은 인간관계라고 생각한다. 교수들의 출제 스타일, 일명 족보를 숙지하지 않으면 좋은 성적을 받기 힘들다. “절대 혼자 죽어라 공부하는 사람이 학점 잘 받는 일은 없어요.” 선배 동기들과 사이가 좋아야 한다는 설명이다. “친구들마다 잘 알고 있는 부분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질문을 주고받다보면 어설프게 알던 것도 진짜 내 것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춤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의외의 공통점. 오승은씨는 아예 대학 4년 동안 힙합댄스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서혜영씨는 라틴댄스 특히 살사를 즐긴다. 작년 9월부터는 동아리 공연팀에 합류해 공연을 할 예정이었지만 어학 연수 관계로 참여 여부는 불분명하다. 이화여대 건축학과 차지은씨는 앞으로 스포츠댄스를 배우고 싶어한다.

(백강녕 주간조선 기자 young100@chosun.com)

◈ 이들의 꿈은?

“현실 참여하는 지식인 되고 싶어요”

“공부가 너무 재미있어요. 계속해서 공부하고 싶어요.”

대학 수석 졸업자들의 꿈은 예상대로 교수(5명)가 가장 많았다. 학자(1명), 연구원(2명), 과학자(1명)와 일단 학업계속(2명)까지 합치면 설문 응답자(18명)의 과반수가 넘었다. 공부하는 게 가장 즐겁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꿈을 막연하게 생각하지만은 않는다. 철저하게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단순히 상아탑에 머무르는 교수나 학자가 아니라 현실에 뛰어드는 실천하는 지성인이 되려 한다.

오승연씨는 정치외교학을 공부해서 학자가 되고 싶어한다. 3학년 때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에 1년 간 교환학생을 다녀오면서 학자의 꿈을 굳혔다. 재학 중 한국 유네스코가 주최한 세계 청년 국제야영에 참가해 위안부 할머니들과 10일 정도 함께 보내면서 모의유엔, 안보토론회 등 다양한 활동을 했던 그는 한국고등교육 재단 제28기 해외유학 장학생으로 선발돼 미국으로 유학을 갈 예정이다. 차지은씨 역시 교수 겸 건축가의 꿈을 일찍부터 굳혔고 ‘21세기 지도자 장학금’을 받아 5년 간 유학생활을 지원받게 된다.

중앙대 광고홍보학과 대학원에 진학한 김경민씨는 “실전을 익힌 후 참교육을 실천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민정씨, 한림대 유전공학과 이혜연씨 역시 교수를 꿈꿨으며 전북대 응용생물학과 임미연씨는 해외에서 생화학을 연구하면서 선교활동을 병행하고 싶다고 밝혔다. 또 이지영씨는 벤처기업 연구원 생활 후 대학원에 진학할 예정이다. 역시 연구원을 꿈꾸는 홍성근씨는 “훌륭한 업적은 남기지 못하더라도 남이 남긴 훌륭한 업적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정도까지 되었으면 좋겠다”면서 “몇몇 안되는 사람들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가슴 벅찬 일”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공부를 계속하고 싶어하는 사람들 중에는 가정을 소중히 하면서 교수와 연구직을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박범수씨는 “나를 믿고 의지할 가족들에게 먼저 믿음직스러운 존재가 된 후 한국을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대한민국의 발전에 기여를 하고 싶다”면서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되새기고 싶다”고 말했다.

김배호씨, 강성석씨는 아직 미래에 대해 확실한 결정을 한 것은 아니지만 일단 학업을 계속할 것이라고 해서 교수, 학자, 연구원으로 자연스럽게 접근해가고 있었다. 특히 세 사람은 자신이 가진 것을 베풀고 싶다고 공통적인 대답을 해서 더욱 구체적인 꿈을 읽을 수 있었다.

전공은 살리되 학교 테두리를 벗어나 더욱 현실적인 직업을 가지고 싶어하는 부류가 교수의 뒤를 이었다. 서창우씨는 공인회계사를 꿈꿨다. 현재 시험 준비 중이고 유학을 가서 보다 넓은 세계에서 국제적인 감각을 키우고 싶어했다. 서혜영씨는 동시통역사를 꿈꿨다.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배우고 싶다는 서씨는 일단 스페인 어학 연수를 다녀온 뒤 진학한 후 취업을 하려고 한다. 숙명여대 중어중문학과 김봉자씨는 중국무역 전문가가 되고 싶어했다. 그는 “앞으로 거대한 시장을 형성하게 될 한·중 무역 활성화를 위해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우식씨는 일단 직업이 정해진 상태. SK텔레콤 본사에 근무하게 됐다. 정씨는 “경영학 공부를 하면서 ‘필드’에서 뛰고 싶었다”면서 “경력을 쌓은 뒤 MBA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현재 사법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전남대 법학과 김자회씨는 일단 시험 결과를 보고 미래를 결정하기로 했다.

●꿈과 현실의 차이로 고민도

수석 합격자라고 해서 모두 ‘포장도로’를 열심히 달리고 있는 것만은 아니었다. 꿈과 현실의 커다란 괴리로 고민하는 부류도 있었다. 김혜진씨는 유전공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했지만 의대 편입에는 실패했다. 일단 대학원을 진학해서 석사를 마치고 의학대학원에 도전할지 아니면 다시 내년에 편입시험에 도전해야 할지 못 정했지만, 의학 생물학 분야를 계속 공부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녀는 “인체의 신비와 질병에 대한 고통을 감해줄 수 있는 연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은영씨 역시 환경보호와 자연 연구를 소홀히 하는 현상에 대해 불만을 드러냈다. 서울 월드컵 공원에서 생태프로그램 운영자로 일하고 있는 정씨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지 같은 잡지의 생태 해설가나 환경 운동가가 되고 싶어한다. 그는 대학교 1학년 때부터 남산야외식물원 자원봉사를 시작해서 지금은 쓰레기산 난지도가 공원이 되고 자연의 부분으로 돌아가는 과정, 생태, 식물을 설명하는 일을 하고 있다. 정씨는 “생태 해설가의 경우 한국에서는 아직 미개척 분야라 의미는 있으나 앞길이 너무 막막하다”면서 “기회가 되면 선진국에서 체험과 공부를 더한 뒤 한국으로 돌아와 선구적인 생태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싶다”고 말했다.

(서일호 주간조선 기자 ihseo@chosun.com)

◈ ‘사회 이슈’ 토론

“사회 최대과제는 선진국 진입”

주요 대학 수석 졸업자들은 우리 사회의 주요 이슈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갖고 있을까.

먼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시급한 과제로 무엇을 생각하느냐는 물음에서는 제시된 다섯가지 항목(선진국 진입, 통일, 분배, 지역감정 해소, 부패추방) 중 선진국 진입(5명)을 가장 많이 지목했다. ‘요즘 젊은 학생들은 경제 성장과 선진국 창출이란 목표는 과거 개발 시대를 풍미하던 구호로 생각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일반인들의 생각과는 달리, 수석졸업자들의 다수는 선진국 진입을 우리 사회가 우선적으로 지향해 나아갈 방향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4명은 부패추방을 지목했다. 서창우씨는 “부패가 만연한 사회에선 새로운 희망을 기대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3명은 지역감정 해소를 지목했다. 강성석씨는 “선진국이 되어도, 통일이 되어도, 경제적 분배가 고르게 되어도 국민간에 신뢰와 믿음이 없으면 안된다”면서 “우선 이웃끼리 나아가 지역끼리 사랑하는 국가로 발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젊은층들이 관심을 많이 갖고 있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통일과 분배 문제에 대해서는 각각 2명이 답변했다. 최근 정권 교체기를 맞아 통일과 분배 문제가 주요 과제로 부각되고 있는 것과는 다소 다른 태도를 보였다고 할 수 있다. 통일과 관련해 한 졸업생은 “분단상황이 지속되는 한 군복무는 당연히 받아들인다”고 전제하면서도 “젊은이들이 2~3년 간 군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너무 비생산적”이라고 토로했다. 외국의 젊은이들이 같은 기간동안 학위를 하나 더 취득할 수 있는 것과 비교하면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안타깝다는 것이다.

●“분단 지속되면 군복무는 당연”

이밖에 ▲교육 문제 해결 ▲정치와 경제, 언론의 투명한 독립관계 ▲사람들의 정서 순화가 우리 사회의 시급한 과제라고 지목한 이들도 각각 1명씩이었다. 교육 문제를 지목한 한 졸업자는 “모교의 정치외교학과의 경우 1997학번은 정치외교학, 98ㆍ99학번은 사회과학계열, 2000년 학번은 사회계열로 입학했다”면서 “한국 사회는 교육자들조차 헷갈려할 정도로 교육정책을 자주 바꾼다”고 장기적인 교육 계획을 호소했다.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묻는 질문엔 대다수인 11명이 5가지 항목(매우 진보적, 진보적인 편, 중도, 보수적인 편, 매우 보수적) 중에서 중도라고 답변했다. 학업에 우선적으로 매진한 학생들이어서인지 대체로 정치적으로 어느 한쪽으로 치우지지 않은 성향을 보인 것으로 해석된다. 진보적인 편이라고 답변한 사람은 5명이며, 보수적인 편이라고 답변한 이는 1명이었다.

최근 한국 사회를 달군 반미(反美)시위, 북핵(北核), 미국의 이라크 전쟁 등 핫이슈에 대해서 급진적 견해는 드물다.

우선 반미시위와 관련, 이들은 대체로 평화적 시위를 찬성하고 우리 국민이 사과를 받을 권리가 있다면서도 이번 사태가 국익에 반하는 주장으로 연결되어서는 곤란하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김배호씨는 “우리나라를 둘러싼 세계의 현실을 무시하고 우리 국민의 감성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은 우려된다”면서 “자칫 명분에만 집착하면 미군 철수 등으로 인한 경제적 기회비용, 안보위험성 증가 등 실리면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북핵 문제와 관련해서는 북한의 핵 보유 여부에 대한 의견보다는 현재의 상황을 대화로 풀어나가야 한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많이 내놓았다.

북한의 핵 보유여부와 관련해서는 반대하는 주장에서 북한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견해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했다. 한 졸업자는 “북한이 핵을 가지면 우리 민족이 핵을 가지는 것이 아니냐는 일부 주장이 있는데 찬성할 수 없고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북한의 입장에 동조하지는 않지만 이해한다는 견해도 있다.

미국의 이라크 전쟁 추진과 관련해서는 전쟁 반대론이 우세했다.

(이거산 주간조선 차장대우 bigmt@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