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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3.06. 1743호

[수석 졸업자들의 세계] 방담 “좋아하는 일에 미쳤다”
좌우명 “의욕은 능력을 우선한다”… 다양한 취미 활동


▲ 왼쪽부터 오승연 정은영 서혜영 홍성근 강성석씨. 오승연시와 홍성근씨는 초등학교 동기동창이었던 사실에 놀라워했다.

각 대학 수석 졸업자 다섯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수석 졸업자들은 과연 어떻게 대학생활을 했는지, 미래 설계는 어떻게 하고 어떤 가치관을 갖고 살아왔는지 들어보았다. 이날 방담자리에서 서울대 홍성근씨와 연세대 오승연씨는 초등학교 동창생이란 사실을 알고는 깜짝 놀라며 ‘족보’를 확인한 뒤 반가워하는 이색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참석자 (가나다순)

▲강성석(한양대 응용화학공학부 4.5 만점에 4.43) ▲서혜영(고려대 서어서문학과 4.5 만점에 4.35) ▲오승연(연세대 정치외교학과 4.3 만점에 4.22) ▲정은영(동국대 산림자원학과 4.5 만점에 4.31) ▲홍성근(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4.3 만점에 4.24)

-- 공부 잘한다고 특별하게 대접받거나 반대로 ‘왕따’ 당해서 스트레스 받은 적이 있나?

△오승연(이하 ‘오’로 표기) = 도서관에만 있는 스타일도 아니고 노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친구들과 잘 지냈다. 그런데 동생을 놀라게 한 적이 있다. 방에서 역사책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거리며 웃고 있으니까 “언니, 공부 너무 열심히 하면 미친대” 하면서 울었다.(웃음)

△홍성근(이하 ‘홍’으로 표기) = 친한 사람들은 공부하는 것을 나의 특성 중 하나로 생각했기 때문에 굳이 구분하지 않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괜히 빈정거리기도 했다. 스트레스가 될 만큼 심하진 않았다. 나는 친구나 선후배들과 이야기하면서 함께 공부하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오히려 사람들과 친했다.

●“공부 너무 하면 미친대” 동생이 울기도

△정은영(이하 ‘정’으로 표기) = 사실 나는 소외감 때문에 공부를 했다. 1학년 때 학생회 활동을 하느라 친구들과 짝지어 다니는 것을 못해서 2학년 때는 친해지려고 해도 잘 안됐다. 다행히 노트 필기를 잘 해서 시험 기간에는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어느 날 한 친구가 내 노트를 복사해 공부하고는 시험 끝나자마자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을 보고 더이상 노트를 빌려주려 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공부 좀 한다고 안 빌려준다’고 해서 속이 많이 상했다.

△강성석(이하 ‘강’으로 표기) = 내가 게임과 술을 좋아한다고 말했더니 놀라는 표정을 짓기는 했지만 주변에 친한 형들이 많아서 특별히 ‘왕따’ 당한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서혜영(이하 ‘서’로 표기) = 나는 집안 형편상 1학년 마치고 2년 동안 휴학한 뒤 재작년에 복학해서 다시 2년 동안 학교 다녀 결국 조기 졸업했기 때문에 바쁘게 공부했다. 동급 학생들과 나이 차가 좀 났지만 소외된다는 느낌은 안들었다.

-- 나만의 공부 비결이 있다면?

△강 =수업에 충실한 것이 우선이다. 수업에 빠지게 되면 녹음을 했다. 교양 과목의 암기 사항은 손바닥만한 수첩에 적어 들고다니며 봤다. 여러번 반복해 보다보면 자주 보는 사람 얼굴 생각나듯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정 =필기를 두 번 했다. 강의 시간에는 연습장에 마구 옮겨적고 도서관에서 다시 그날의 강의 내용을 정리해 노트에 깨끗이 옮겨 적었다. 잠이 적은 편이어서 아침 특강도 많이 들었다.

△오 =나는 소리 내면서 자유분방하게 공부하는 스타일이어서 집에서 했고 수업 시간에는 무조건 충실했다. ‘놀아도 강의실에서 놀고 잠을 자도 강의실에서 자자’가 신조였다.

△서 =전공 특성상 암기 위주여서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책이나 메모를 보고 다녔다. 또 상식을 얻기 위해 신문 기사를 많이 봤다.

△홍 =좋아하고 자신 있는 과목을 선택한 것이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내가 좋아하는 과목 위주로 시간표를 구성해서 공부하고 싶도록 만들었다. 궁금했던 사항이나 그날 배운 내용을 항상 머리 속으로 생각하고 다니다가 친구나 선배들, 교수들을 만나 이야기했다. 사람들과 대화하다 보면 은연중에 배우는 것이 많다.

● “과외 받아본 적 별로 없다”

-- 대입때 과외는 받았나?

△서 = 해본 적은 많아도 받아본 적은 없다. 과외받고 싶다는 생각도 안했고 그럴 형편도 못됐다.

△정 =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올라갈 때 단과 학원은 다녀봤는데 별로였다.

△홍 = 초등학교 때 피아노ㆍ수영 학원, 중1 때 속셈 학원을 다녔고 고2 때 수능 때문에 단과 학원에 다녔다. 하지만 내가 자신있어서 혼자할 수 있는 수리탐구보다는 자신없는 언어, 사회 영역에서 학원이 많은 도움이 됐다.

△오 = 학원을 많이 다녔는데 특히 피아노, 쿵푸, 에어로빅 등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은 꼭 다녔다. 부모님이 시켜서가 아니라 항상 내가 졸라서 다닌 것이다. 부모님이 억지로 보내는 아이들도 많지만 그건 아무 소용 없다고 생각한다.

△강 = 동감한다. 어릴 때 피아노 학원, 대학 때 영어회화 학원에 다닌 것 외에는 학교 외 수업 경험이 없다. 학원은 하고자 하는 마음의 성적은 올려주지만 억지로 하는 사람에게는 백해무익하다.

-- 커닝 해본 적은 있나?

△홍 = 딱 한 번 해본 적 있다. 친구들끼리 “한번 해보자” 하고 장난으로 했는데 나중에 죄책감에 시달려 ‘커닝하지 맙시다’란 캠페인을 보고도 찔려서 아무 말 못했다.

△강 = 월드컵 때 공부를 안해서 친구들끼리 의논해서 해본 적 있지만 커닝을 해도 평소 실력만큼 성적이 나오는 것 같다.

-- 운동이나 과외활동은? △오 = 어렸을 때 친구 어머니가 에어로빅 하는 것을 보고 엄마를 졸라 에어로빅 학원에 다녔다. 대학교 4학년 때는 에어로빅 강사 자격증을 땄고 4년 내내 힙합 동아리 활동을 했다. 지금은 재즈 댄스를 한다. 운동도 좋아한다. 쿵푸는 2단이고 승마를 배우고 있다.

△서 = 나도 춤을 좋아해서 살사 공연팀을 만들었다. 이번 달에도 공연이 있다. 합기도는 1단. 수지침도 조금 배웠다.

△정 = 나는 운동보다는 자원봉사를 했다. ‘남산사랑회’라는 야외 식물원에서 일하고 꽃동네 봉사 활동, 문화재 연구 동아리 답사활동 등을 했다. 남들과 즐겁게 나눌 수 있는 것이 좋다. 월드컵 때 월드컵공원에서 ‘생태학습 프로그램 운영자’를 하기 시작해 지금도 하고 있다.

-- 어린 시절의 꿈과 지금 갖고 있는 꿈은?

△홍 = 대통령, 장군, 과학자, 화가, 만화가, 동물학자, 고고학자 등 꿈이 많았지만 지금은 과학자를 꿈꾸고 있다. 특별히 분야를 정하진 않았다. 일단 병역 문제를 해결하고 나중에 결정할 것이다.

△강 = 어린 시절에는 판사가 제일인 줄 알았지만 지금은 ‘지혜로운 사람 되는 것’이 꿈이다. 카이스트 연구원 병역 의무가 끝나고 나면 신앙 공부를 하고 싶다.

△서 = 그림, 운동 등 무엇이든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 지금은 우선 6개월 정도 스페인에 어학연수를 다녀와서 동시 통역 공부를 할지 고민 중이다.

△오 = 중학교 때부터 내 꿈은 정치외교학을 공부하는 것이었다. ‘구멍가게 둘째 딸이 영국 수상이 됐다’는 마거릿 대처의 기사를 읽고 여성 지도자의 모습을 그렸다. 당시에 일본이 만주 철도 부설권과 바꿨다는 간도에 대해서 배웠는데 나는 ‘왜 사람들이 독도에는 분개하면서 간도에는 분개하지 않을까’하며 ‘내가 간도를 찾아야지’하고 생각했다. 앞으로 정치외교학 분야에서 훌륭한 학자가 돼 우리나라가 세계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데 기여했으면 좋겠다. 처음에는 외무고시를 권유하던 부모님도, 대학교 3학년 때 교환학생으로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채플린대에 다녀오고 난 뒤 한국고등교육재단 장학생으로 뽑혀 학문의 길로 가려는 내 신념이 더욱 확실해지자 이제는 적극 지원하신다.

△정 = 어린 시절에는 선생님, 과학자가 꿈이었다. 지금은 삼림에 관심이 많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자연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다. 시민환경연합 등의 시민단체도 많지만 수준도 미약하고 상황이 열악하다. 물론 생계 걱정도 되고 집에서도 걱정하지만 차차 실무쪽에서 경험을 쌓고 이론도 무장해서 우리나라 자연 연구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릴 것이다.

--‘기성세대’에 관해서는 어떤 시각을 가지고 있나?

△오 = 인간은 ‘초심’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실천하는 이상주의자’란 말을 참 좋아한다. 체 게바라 평전 첫 머리에도 “리얼리스트가 돼라, 그러나 가슴속에는 불가능한 꿈을 심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기성세대들은 말과 행동이 너무 다르다. 교통부 장관이라면 책상머리에 앉아있지 말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문제점이 무엇인지 알아내야 한다.

△서 = 우리가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 것은 기성세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기성세대가 아닌 사람이 기성세대를 비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아직 판단하는 것은 무리다.

△홍 = 중요한 것은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세대간에 대화를 많이 하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이다. 우선 가장 가까운 기성세대인 부모님과 대화해 보면 그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정 = 10년 전 사람들도 ‘요즘 애들은…’ 했다고 한다. 세대간의 갈등은 어느 곳에나 있다. 나 역시 역지사지(易地思之)할 수 있을 때 좋은 관계를 형성하는 힘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학생운동 섣불리 나서지 않았다”

-- 학교 다닐 때 소위 학생운동은 해본 적이 있나?

△홍 = 안해봤다. 필요하다는 생각은 드는데 확실히 몰라서 섣불리 나서기가 두려웠다. 잘 모르고 휩쓸려서 하는 것은 좋아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이 나이 어린 사람들의 특권일 수도 있다. 그러나 특권을 남용하면 안된다.

△정 = 1학년 때 학생회 활동으로 거리 행진도 해봤고 전경이랑 맞서 싸우기도 했다. 하지만 학내 문제 즉 복지·등록금 문제에 대해 싸울 때만큼 절실하게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질 필요는 있지만 과격한 시위에는 반대한다. 요즘 인터넷 추모나 촛불 시위 등 얼마든지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루트가 많아졌다. 투쟁을 위한 투쟁에는 반대한다.

△홍 = 나는 네티즌도 조심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익명성에 휩쓸리기 쉽기 때문이다. 네티즌들이 군중심리를 조장해서 마치 거기에 따르지 않으면 큰일 날 것처럼 동조하는 것도 일종의 ‘강요’다.

△오 = 표출하는 방식의 문제라고 본다. 서로 친했던 친구가 정치의식이 맞지 않아 서로 비방하는 대자보를 써놓은 것을 봤다. 정치판과 똑같다. 미국의 학생회는 정말 학생의 입장에서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했다. 학교 재정 투명성을 위해 싸우고 도서관에 뭐가 부족한지 해결했다.

-- 이성 친구는 없었나? 공부와 이성 친구는 서로 어떤 영향을 미쳤나?

△정 = 서로 학교 생활이나 공부에 대해 고민이 생기면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각자 의견도 이야기해서 좋았다.

△오 = 나도 오히려 공부에 도움이 됐다. 더 떳떳해 보이고 싶어서 열심히 했다.

△홍 = 공부와 이성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잠시 만난 친구가 있었지만 공부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서 = 현재 남자 친구와는 서로 존중하는 편이다. 서로 의지하는 것보다는 어느 정도 독립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만나는 게 원칙이다.

△강 = 미팅, 소개팅을 많이 해봤지만 오래오래 보던 사람한테 정이 든다. 사람간에는 서로 잘 알고 신뢰가 쌓였을 때 관계가 형성되는 듯하다. 서로 신뢰하는 이성 친구는 공부에 방해될 리가 없다.

●네티즌, 군중심리 강요하는 것도 ‘강요’

-- 대학생활 중 힘든 점은?

△정 = 진로 고민이 가장 컸다. 자연을 연구한다는 길이 험하기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고 부모님 반대에도 부딪쳤지만 지금 선택에 후회는 없다.

△강 = 나는 무언가에 잘 빠져든다. 영화, 책, 게임, 공부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사람을 사귈 때가 가장 아팠던 것 같다. 물론 힘든 상황을 겪고 나면 그게 좀더 인생에 좋은 기억으로 남아 도움이 된다는 말도 맞는 것 같다.

△서 =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서 남들처럼 어학연수나 풍족한 교육 환경을 제공받지 못한 것이 가장 힘들었지만 그때마다 좋아하는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잡아야 했다.

△오 = 아직 힘든 적이 없었다. 학교 교문만 봐도 가슴 설렐 정도로 학교 생활이 좋았다. 하고 싶은 공부를 일찍 찾은 게 축복인 것 같다.

-- 후배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홍 = 후배들한테는 좋아하는 것을 하라고 말하고 싶다. 좋아하지 않으면 잘 되지도 않는다.

△정 = 동감이다. 좋아하는 일을 해야 자신감도 생긴다.

△강 = 대학 4년 동안 해보고 싶은 것 다 해봤으면 좋겠다.

△서 = ‘세상을 다 가질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사람들은 내가 뭔가를 해놓고 준비를 끝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나는 아직도 앞이 깜깜하다. 그래도 나는 뭔가에 부딪칠 자신이 있다.

△오 =‘의욕은 능력을 능가한다’는 말이 있다. 누구나 자신의 능력을 한계에 가두지 않으면 좋겠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아이큐, 수능 점수에 자신을 가두는데, 나도 한때는 공부를 그렇게 잘하지 못하던 사람이었다. “재주가 덕을 이겨서는 안된다”는 말도 부모님이 늘 하시는 말씀이다.

(서일호 주간조선 기자 ihseo@chosun.com) (유나니 주간조선 기자 nani@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