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메이커, 518호, 커버스토리

미디어 전쟁의 중심 알 자지라



미-영 연합군의 이라크 침공 4일째를 맞은 지난 3월 23일 TV를 지켜보던 미국인들은 갑작스런 화면에서 좀처럼 시선을 떼지 못했다. 미군 시신 5~6구가 시커멓게 불에 타고 핏자국이 낭자한 상태로 임시 시체안치소에 널브러져 있었다. 누군가 시체를 총으로 찌르거나 굴리는 모습도 보였다. 완전 군장에 철모를 쓴 또다른 미군 병사의 시신은 고속도로 가에 엎어져 있었다. 이어 미군 병사 5명이 공포에 질린 얼굴로 자신의 이름과 고향, 전투에 참가한 이유 등을 밝혔다.

뉴욕 증권거래소 출입 금지당해
아랍의 위성TV 방송 '알 자지라(Al-jazeera)'가 이라크 국영TV가 촬영한 미군 시신 및 포로 인터뷰 장면을 여과없이 방영하자 미국 방송사도 하나둘씩 화면을 받아 보내기 시작했다. 미 전역은 바그다드에 떨어진 수천 발의 폭탄보다 더 큰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다. 이 보도는 미국민의 이라크전 지지율이 큰 폭으로 떨어지고 미 국방부와 연합군 사령부가 초기 작전 실패에 대한 거센 비판에 직면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단기전 전망에 짙은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이었다.

알 자지라는 이 방송 이후 뉴욕 증권거래소 출입을 금지당하는가 하면 해커들로부터 웹 사이트 공격을 받는 등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1991년 걸프전은 CNN이 피터 아네트의 바그다드 공습 생중계와 함께 세계적인 뉴스 채널로 화려하게 부상하는 계기가 됐지만 '미디어 전쟁'으로까지 일컬어지는 이번 이라크전에선 알 자지라 방송을 필두로 아부다비TV-알 아라비야TV 등 아랍권의 위성방송이 CNN-BBC 등 서구의 유수 방송사를 제치고 가장 공정한 언론으로서 성가를 높이고 있다.

알 자지라의 선전은 개전 당일인 3월 20일부터 시작됐다. 미국이 바그다드에 공습을 시작했을 때 세계 언론은 알 자지라의 바그다드 공습 사이렌 소식으로 이라크 침공 제1보를 타전했다. CNN도 알 자지라가 생중계한 바그다드 공습 화면을 그대로 받아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

이라크 침공 1보 CNN도 받아 내보내
미군 포로 인터뷰가 방영된 3월 23일에는 이라크군과 바그다드 시민이 바그다드 상공에서 격추돼 비상탈출한 것으로 알려진 미군 조종사들을 수색하는 장면이 알 자지라에 생중계됐다. 티그리스강 위의 보트에 탄 이라크 군이 강변을 향해 사격을 하고 강변 갈대숲에 불을 지른 뒤 수십 명의 군인과 민간인이 수색을 펼치다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기까지 몇 시간 동안 생방송으로 중계된 알 자지라 화면은 CNN 전파를 타고 전세계 안방으로 전해졌다.

같은 시각 미 ABC방송과 NBC방송 프로그램에 각각 출연 중이던 리처드 마이어스 미 합참의장과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이 화면과 관련한 질문 공세에 호되게 시달려야 했다.

마이어스 합참의장은 "모든 전폭기가 임무를 수행하고 안전하게 귀환했다"고 말했으나 알 자지라의 바그다드 특파원은 "미국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알 자지라 방송은 나중에 미군 조종사 1명이 생포됐다고 전했으나 연합군측은 지금까지도 비행기 격추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이 사건의 진위는 아직 베일에 가려져 있는 상태다.

알 자지라가 이번 전쟁에서 결정적으로 타언론과 차별성을 부각한 사례는 이라크군 집단투항설에 관한 보도다. 미 중부사령부와 미-영 국방부는 3월 22일 이라크 육군 51사단 사령관 칼레드 알 하셰미 준장이 8,000여 명의 사단 병력 전체를 이끌고 연합군에 집단 투항했다고 발표했다.

BBC방송은 군 소식통을 인용, 지금까지 이라크군 투항 병력이 1만5천 명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몇 시간 뒤 알 자지라 방송에 "51사단은 바스라를 사수하고 있다. 미국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알 하셰미 준장의 인터뷰가 나오면서 진실게임은 싱겁게 막을 내렸다. 그로부터 3일이 지난 뒤에도 이라크 포로는 3,500명을 넘지 못했다.

무제한적 '현장 접근권' 보장받아
3월 26일 영국 언론이 일제히 보도한 바스라 봉기설도 마찬가지였다. 영국의 ITV-데일리 텔레그래프 등은 바스라에서 시아파의 반후세인 봉기가 발생했다고 영국군 정보 소식통을 인용해 일제히 보도했다. 제프 훈 영국 국방장관도 이를 확인했다. 하지만 51사단 투항설 오보로 곤욕을 치렀던 대부분의 세계 언론은 조심스럽게 이 사건을 다뤘다.

이후 알 자지라 방송이 "바스라는 평온한 상태다. 어떠한 소요 조짐도 없다"는 바스라 특파원의 보도를 내보내자 바스라 봉기설 역시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훈 장관은 "바스라 내부 상황이 분명하지 않다"고 말을 바꿨다.

알 자지라는 이번 전쟁에서 거의 유일하게 이라크 정부로부터 무제한적인 '현장 접근권'을 보장받았다. 모술과 바스라에 특파원을 내보낸 방송은 아랍권에서도 알 자지라가 유일하다. 진실에 기반한 알 자지라의 거듭된 폭로 때문에 미-영 연합군의 전황 브리핑은 크게 신뢰를 잃었다. 전황과 관련해 거짓말을 하기도 쉽지 않게 돼 결국 초기 작전 실패라는 비난 여론에 직면하게 됐다. 카타르에 있는 중부사령부의 브리핑장에선 "도대체 1백50만달러나 들여 지었다는 이 브리핑 현장에서 우리가 사령부로부터 얻는 정보가 무슨 쓸모 있는가"라는 미국 기자의 질문에 기자들의 박수갈채가 쏟아지기도 했다.

알 자지라는 서방 방송과 달리 해설이나 분석보다 철저히 현장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도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두개골이 훼손된 채 싸늘하게 식어 있는 시신은 12세도 채 되지 않은 어린아이의 것으로 보였다. 카메라는 병원 마룻바닥에 널브러진 수많은 시신 사이에 놓여 있는 이 아이의 시신 위에 잠시 멈춰섰다."

3월 24일자 영국 일간 [더 타임스]는 알 자지라 방송이 "고통스러운 장면을 내보내 죄송하다"는 앵커 멘트와 함께 연합군의 바스라 공습에 희생된 이라크 어린이의 처참한 모습을 이처럼 가감없이 방영했다고 전했다.

이번 전쟁에서 알 자지라가 드높이고 있는 성가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200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 때도 알 자지라는 전세계 언론 가운데 유일하게 카불에 특파원이 남아 현장 상황을 끝까지 전했다. 당시 시종 공정한 보도로 미국의 미움을 산 알 자지라는 미군의 스마트 폭탄에 카불 지사가 폭격을 당하기도 했다.

이라크 정부엔 '양날의 칼'일 수도
알 자지라는 결코 친이라크, 혹은 친후세인 매체가 아니다. 그간 나라를 구분하지 않고 아랍의 비민주적인 독재정권을 끊임없이 비판하는 바람에 본사가 있는 카타르 정부의 커다란 외교적 골칫거리가 된 지 오래다. 아랍권 내 알 자지라의 수많은 기자가 비판적 보도로 체포, 추방됐으며 일부 기자는 사형 판결까지 받은 상태지만 공정 보도의 목소리를 굽히지 않고 있다.

이번 전쟁에서 미-영 연합군과 대조적으로 이라크군이나 이라크 정부의 발표가 비교적 정확한 것 역시 알 자지라의 존재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이런 점에서 알 자지라는 어쩌면 이라크 정부엔 '양날의 검'일지도 모른다. 만약 후세인이 죽거나 내부 쿠데타가 일어난다면 알 자지라가 이를 보도하지 않을 리 없기 때문이다.

문영두〈국제부 기자〉 ydmoon@kyunghyang.com

美 패권주의 -아랍 봉건질서에 도전



"아니 이 성냥갑처럼 작은 건물에서 그 모든 문제가 비롯된다는 말이오?"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언젠가 알 자지라 방송국을 비공식 방문한 뒤 측근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무바라크 대통령은 1980년 안와르 사다트 당시 이집트 대통령 암살 사건 이후 실시된 비상계엄을 아직도 유지한 채 독재정치를 일삼고 있다. 그는 친미정책을 펴면서 22년째 장기집권하고 있으며 아들에게 권력을 물려주려고 한다. 알 자지라로부터 호되게 당해온 그로서는 페르시아만의 소국 카타르에 있는 이 조그마한 방송사가 자신을 그토록 괴롭혔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 모양이다.

미국 정책에서 무시할 수 없는 존재
알 자지라는 1996년 페르시아만에 있는 인구 75만 명의 작은 반도국 카타르에서 설립됐다. 알 자지라는 섬 또는 반도를 뜻한다. 무혈 쿠데타로 아버지를 밀어내고 정권을 장악한 셰이크 하마드 카타르 국왕은 각종 개혁조치를 취해왔으며 특히 알 자지라에 매년 1억달러 가량을 지원하고 있다. 알 자지라는 때마침 회사가 망해 오갈 데 없는 BBC 아랍 텔레비전 전문가들을 대거 영입할 수 있었다. 알 자지라는 아랍권의 CNN으로 불리지만 정작 자신은 BBC를 모델로 삼고 있다고 자부한다.

알 자지라는 송출 이후 아랍에서 폭발적인 인기와 비난을 동시에 받아왔다. 부패한 아랍 각국 정부를 난타해 아랍 지도자들로부터는 미움을 산 반면 아랍 민중으로부터는 절대적 신임을 받고 있다. 또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생생하고 균형감 있게 보도해 이스라엘과 미국을 당황케 하고 있다.

이제 알 자지라는 아랍 정치권과 나아가 미국의 대아랍 정책에서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됐다.

1999년 1월 27일 밤 방영한 토크쇼를 살펴보자. 당시 알제리의 수도 알제의 거리는 한산했다. 이날 토크쇼에 내전 당사자인 이슬람 원리주의자와 정부측 인사가 나와 알제리 내전과 관련한 논쟁이 있을 것으로 예고됐기 때문이다. 추방된 반체제 인사와 정부측 대표는 쇼가 시작되자마자 언성을 높이더니 10여 분이 지나서는 삿대질을 오갔다. 순간 전기가 나갔다. 군사정권이 의도적으로 수도 알제뿐만 아니라 전국 주요 도시에 전기 공급을 끊은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한때 수도 리야드의 모든 커피숍에서 알 자지라 방송을 시청하지 못하도록 위성방송 방영을 금지시켰다. 알 자지라가 전제왕권과 이슬람 원리주의인 와하비즘(18세기 중엽부터 일어난 이슬람 복고운동) 등을 비판적으로 보도한 것에 대한 앙갚음이었다.

알 자지라의 토크쇼 도중 전화를 건 한 시민은 "아랍을 멸망시킬 야욕을 가진 외국 군대(미군)를 쿠웨이트에 들어오도록 허용한 자는 신의 징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주장했고, 이것이 그대로 방영됐다. 모욕을 당한 쿠웨이트 국왕과 정부는 당장 알 자지라의 사무소를 폐쇄시켰다. 이집트는 자국민이 알 자지라의 토크쇼에 출연하지 못하도록 규제했고, 모로코는 알 자지라 본부가 있는 카타르 주재 자국 대사를 소환하기도 했다.

오히려 서구 언론보다 더욱 서구적
대부분 국영 언론을 통제해 국민의 입과 귀를 막아온 전제왕권, 독재적 공화제 등을 유지하고 있는 아랍 각국에는 알 자지라가 눈엣가시 같은 존재이다.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을 등한시한 채 친미정책을 펴던 아랍 정부들은 알 자지라 방송에 힘입어 군중시위가 과격해지고 반미를 넘어 반정부 시위로까지 확산되자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아랍인에게 알 자지라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이다. 이집트 사람이건 사우디아라비아 사람이건 제대로 된 자국 뉴스를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는 알 자지라를 볼 수밖에 없다. 해외에 거주하는 아랍인도 위성안테나를 구입해 알 자지라를 통해 고향 소식을 듣고 있다. 또 미국과 유럽 등지에 거주하는 아랍인은 알 자지라의 보도에 각성돼 정치적 행동으로 옮기고 있다.

알 자지라는 미국의 패권주의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해 아랍 대중으로부터 신뢰를 얻고 있다. 2000년 9월 팔레스타인에서 인티파다(봉기)가 일어났을 때도 거리에 나뒹구는 시체와 처참하게 파괴된 건물 등을 고스란히 전한 것은 알 자지라뿐이었다.

그러나 알 자지라는 아랍 편향적이지 않다. 오히려 서구 언론보다 더욱 서구적이다. 이는 알 자지라가 '하나의 의견과 그와 다른 의견'을 보도함을 모토로 삼고 있는 것에서 드러난다.

서구 방송이 팔레스타인인이 저지른 처참한 자살폭탄테러 현장을 생생한 화면으로, 이스라엘군의 잔혹행위는 화면없이 작게 취급할 때 알 자지라는 똑같은 무게로 취급한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로 토론을 벌일 때는 이스라엘 고위관리를 반드시 초청한다. 아랍 언론 중에서 이스라엘 관리를 인터뷰하는 것은 알 자지라가 유일하며 이것이 아랍 각국의 정치 지도자와 언론을 분노케 한다.

알 자지라가 아랍 대중으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얻는 것은 아니다. 절대신까지 땅으로 끌어내리는 등 아랍권의 중세 봉건 질서를 강하게 질타하기 때문이다. 이 방송의 가장 인기 있는 토크쇼 [상반된 견해]에서는 코란과 마호메트의 권위에 도전하는 견해가 여과없이 방영된다. 많은 아랍인은 "알 자지라는 정치-경제-사회 문제는 훌륭하게 다루되 종교문제 같은 신성한 주제는 아예 다루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카타르 정부에 유독 유화적 '의구심'
아랍권에서 유명인사가 된 이 토크쇼 진행자 파이잘 알카심은 "아랍 세계에서 발표의 자유는 아직도 석기 시대에 묻혀 있다"며 "탈우상화를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이에 반대하는 사람도 있다"고 반박한다. 이는 방송사의 보도 원칙인 '하나의 의견과 또 하나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다.

미국 정부는 알 자지라가 반미 성향의 종교-외교 전문가를 너무 자주 등장시킨다고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아랍 대중에게 큰 영향력을 미치는 알 자지라를 무시할 수 없게 됐다.

알 자지라는 물론 약점도 있다. 이 방송사는 카타르 국왕이 특별한 이유없이 선거를 연기하는 것에 대해 비판하지 않는 등 카타르 정부에 대해서만은 유독 유화적이다. 경영진이 "카타르의 국내 문제는 아랍권 전체에서 큰 이슈가 못 된다"고 해명했으나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이같은 약점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알 자지라가 국제정치를 바꾸고 있다는 것이다. 아랍 사람도 알 자지라로 인해 자신의 권리와 자유에 눈을 떠가고 있다.

미국은 이라크 침공 명분으로 이라크의 '자유화-민주화'를 내세우고 있다. 미국은 이를 토대로 아랍권 전체를 '민주화'하겠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세계 유일 최강대국인 미국의 '총'이 이루려는 민주화와 성냥갑 크기만한 방송사의 '말'이 목표하는 민주화는 너무나 다른 것 같다.

박성휴〈국제부 기자〉 songhue@kyunghyang.com

CNN 제국 몰락하는가



걸프전 이후 세계 뉴스 시장을 장악해온 'CNN제국'이 2차 걸프전인 이라크전에서는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 영국의 〈텔레그래프〉지는 3월 25일 "(걸프전 이후) 10여 년이 지난 지금 CNN은 더 이상 필수적인 미디어가 아니다"라고 CNN의 몰락을 지적했다. 걸프전 당시 SNG라는 첨단 장비로 바그다드의 전황을 세계에 생중계했던 CNN 대신 알 자지라 방송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나섰다.

CNN은 전쟁 초기 야심만만한 방송을 꿈꿨다. 수륙양용 수송차량인 험비에 위성전선 시스템을 달고 미군 뒤를 따라붙었다. 종군기자들이 방독면을 쓰고 벙커를 기어다니며 비디오 폰과 위성을 통해 한 편의 영화처럼 동영상을 '생중계'했다. 하지만 생명의 존엄성을 외면한 상업주의의 극치라는 비난을 받았다. 상업주의적 방송은 방송이 지향해야 할 '진실 보도'의 사명을 슬그머니 감추었다.

상업주의의 극치라는 비난을 받아
개전 초기 이라크에 거침없이 진격해 들어갔던 CNN이 알 자지라에 밀리고 있는 것도 '진실'이라는 진지를 그냥 지나쳐 갔기 때문이다. 오로지 바그다드 함락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점에서 CNN과 미군의 모습은 닮아 있었다. CNN 뉴스는 '진실의 전쟁'보다 '속도의 전쟁'에 집착했다. 속도를 담보로 하는 속보 경쟁은 외부가 아니라 미국 내부 뉴스 시장에서 비롯했다.

미국 내에서 미디어 전쟁은 이미 이라크전 이전에 시작됐다. 뉴스 방송의 양대 산맥인 CNN과 FOX뉴스 간의 전쟁을 말하는 것이다. CNN뉴스는 이라크 전쟁에서 아랍계 방송인 알 자지라 방송에 도전받기 전에 이미 FOX뉴스로부터 도전받았다.

빅3라고 표현되는 NBC-CBS-ABC방송 시장에 뉴스 전문 케이블 채널인 CNN은 1991년 걸프전을 계기로 확고한 뉴스매체로 자리잡았다. 여기에 다시 호주의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이 운영하는 FOX가 끼어들었다. FOX뉴스는 단기간에 빅3 뉴스의 시청률을 따라잡았다. 미국인 대부분은 CNN과 FOX뉴스를 보고 있다.

재미를 위주로 하는 FOX뉴스의 선정적인 보도는 CNN에 비해 신뢰성을 얻지는 못했다. 하지만 지난해 FOX는 CNN의 시청률을 뛰어넘었다. 지난해 두 방송은 알 카에다 비디오 테이프 입수를 놓고 신경전을 벌였다. FOX는 CNN이 비디오 테이프를 입수하면서 대가 지불을 부인하다 나중에 이를 번복했다고 비난했다.

CNN에 이라크전은 뉴스미디어 아성의 건재함을 확인받는 기회로 떠올랐다. 걸프전에 이어 CNN의 위력을 입증할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었다. CNN은 기자-PD 등 250명을 중동에 파견했다. 수륙양용 특수차량과 위성 비디오 폰 등 첨단장비를 투입했다. CNN은 이번 전쟁 취재에 3천만달러(약 3백70억원)을 쏟아부었다.

전쟁을 처음으로 알리는 보도는 CNN이 FOX에 3분 앞선 11시 36분(한국 시간)에 시작했다. NBC의 최초 보도 32분에 비해 4분이나 늦었다. 전쟁 개전일인 3월 20일의 시청률은 FOX가 CNN을 앞섰다. 그러나 CNN의 보도가 더 공정하고 충실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세계의 방송국도 대부분 CNN의 화면을 인용해 이라크전을 보도했다. 두 방송은 서로 '독점화면'이라는 문구를 달아 경쟁을 벌였다.

걸프전과 달리 미국의 방송사는 바그다드에 '교두보'를 마련하지 못했다. 이라크 정부는 CNN의 편파 보도에 대한 앙갚음으로 취재진을 국외로 내쫓았다. 바그다드 공습 장면은 알 자지라를 비롯한 아랍어권 방송의 몫이 되었다. 세계의 방송국도, 심지어 미국의 방송도 알 자지라의 화면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방어' 쪽의 방송을 포기당한 채 '공격' 쪽의 방송만 하는 미국의 방송사는 주로 백악관과 펜타곤의 입장만 전달했다. 전세계적인 반전 시위도 국익에 맞게 축소됐다. CNN보다 더 우익적인 매체인 FOX는 미-영 연합군의 전과를 알리기에 부산했다. FOX는 미국의 바그다드 공습을 '바그다드 도심 재개발 계획'이라고 묘사해 비난을 받기도 했다.

'공격' 쪽의 방송만 하는 미국 방송사들
알 자지라가 내보낸 미군 포로와 미군 사망자의 모습은 미국 쪽 방송에 치명적인 '폭격'을 가했다. 미국 쪽 방송이 주장하는 일방적인 승리가 사실이 아님을 아랍어권 방송이 보여준 것이다.

CNN은 초기에 미군의 요청에 따라 보도하지 않았지만 CBS는 짤막하게 포로 필름을 보여줬다. CNN은 3월 23일 정지화면을 보여주는 형식으로 충격을 완화시켰다. FOX는 미군 포로 필름을 방송할 계획은 없지만 사망자의 얼굴 모습을 가린 채 정지화면으로 보여주기로 결정했다. 필름에 대해서는 ABC와 NBC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 중이다. 이라크TV가 촬영한 것으로 알려진 이 화면은 이미 중동과 유럽 일대에서는 방영됐다.

미국 방송은 미-영 연합군의 피해 상황이 쏟아져도 미 국방부의 시인 발표 이전에는 보도를 자제하고 있다. 아랍어권 방송이 전한 바그다드 폭격의 참상도 미국 방송의 전파를 타지 못했다. 알 자지라 등이 보낸 바그다드 시내 전경만 간간이 내보내고 있다.

미국의 뉴스 방송이 밀리면서 서방의 다른 방송도 함께 밀리고 있다. 영국의 BBC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200명의 대규모 취재단을 투입한 BBC는 '바스라 함락' '바스라 내 봉기' 등을 보도했지만 사실이 아님이 드러나고 있다. 이들 방송을 인용한 유럽 방송도 함께 오보를 낸 꼴이 되고 말았다.

그나마 BBC는 미국 방송과 달리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평이다. 연합뉴스는 BBC가 최근 "미국 언론이 전쟁의 이유와 군사행동 결과에 대한 취재는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적인 보도를 했다고 전했다.

반전 쪽에 선 유럽 국가의 방송은 전쟁에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알 자지라 쪽에서 보내는 바그다드 폭격의 참상도, 미군 포로 모습도 안방에 생생하게 전달되고 있다.

프랑스 방송사는 공정보도를 위한 지침에 합의했다. 이 보도지침에는 '특정 지역사회 주민과 특정 국가의 분노를 일으키는 주제에 관해 균형과 엄격함을 가진다'고 표현돼 있다. 특정 지역이란 아랍권을 말한다.

미국의 〈사이언스 모니터〉지는 '인식의 전쟁(War of Perception)'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모래바람이 부는 이라크 전선의 '진짜 전쟁'과 함께 세계가 미디어를 통해 인식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윤호우 기자 hou@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