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랑이의 글을 읽고...

어제 워크숍 후에 모처럼 근처 삼겹살 집에서 간단한 저녁을 먹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헤어져 차를 타고 오려는데 귀성차량에다 눈까지 내려 움직이지를 않더군요. 그래서 차를 다시 학교 주차장에 놔두고 전철을 타러갔습니다. 그런데 후문에서 전철역까지 상당히 멀더군요. 정문에서 전철역 사이 쯤 왔을 때 내리막길에서 고전하고 있는 차들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구경을 했습니다. 스키장에서 할강 하듯이 한 대식 차례로 경사진 길을 내려 오는데...죽죽 미끄러지며 길 양옆에 주차한 차를 들이받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치더군요. 나도 전에 그런 경험을 해본 터라 이 순간 운전자의 공포감이 어떤지 짐작이 갔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심정으로 5분도 넘게, 추위도 잊고 차들의 곡예를 지켜봤습니다. 무엇을 기도했느냐...뭐, 다 아시면서.

그런데, 저의 기도는 실패했습니다. 부딪칠듯 하면서 아슬 아슬하게 차들이 성공적으로 내려가더군요. 차 놔두고 강추위에 몇 십분 걸어 전철을 타러가는 나의 신세가 더욱 처량해 졌습니다.

멋쩍어진 나는 돌아서서 다시 전철역으로 향했는데, 그 순간 보기 좋게 길바닥에 퍼대기(표준말?)를 쳤습니다. 왼쪽 옆구리, 골반, 허벅지 쪽으로 자유 낙하를 한 탓에 멍이 시퍼렇게 들어 밤새 앓았습니다.

글쎄, 두 가지 사건이 동시에 발생한다고 반드시 하나가 다른 하나의 원인이 되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래도 "기도 & 낙상" 이라는 어제 밤의 사건을 누가 듣는다면 "세상은 공평한 것(That's fair.) 라고 하겠지요. 하지만, 저는 억울합니다. 나는 그 당시 차들이 미끄러져 가벼운접촉사고가 나야지 모든 사람들의 후생이 올러간다고 보았습니다. 무엇보다, 이런 눈오는 날에는 절대로 차를 두고 다녀야 한다는 확실한 교훈을 배우려면 그런 상황에서 사고가 한 번 나야 합니다. 몸도 가볍게 아파봐야 큰 병을 예방할 수 있듯이, 가벼운 사고가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지요. 동시에, 길을 지나는 저 같은 사람에게 "고소하다" 라는 느낌까지 선사한다면 정말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그런 것 아닐까요.

이런 애틋한 내 마음을 무시하고 신께서 나를 낙상하게 했다면...
Tha't really not fair!! 가 아닐까요.

사실 낭랑이의 글을 읽고 어제 사고난 사람이 나 만이 아니라 기뻤고, 낭알이도 함께 기뻐할 것 같아 몇 자 올렸습니다.

***

그런데, 낭랑이의 글을 읽다 눈이 번쩍 뜨인 부분이 있었습니다.
글 중간 쯤 가면 "(군대서 휴가나온) 선배와 우연히 만나 몸도 녹인 터라...." 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정말 우리 같이 순진한 독자들 입장에서는 얼굴이 붉어지는 일이 군요.

워크숍 팀중에서 낭랑이가 제일 나이가 어린데 이런 과단성이 있다는 것과, 그것을 이렇게 공개적인 자리에서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다는 것 ...저를 두번 놀라게 한 사실이었습니다.

눈이 오면 세상이 달라지지요.
사람의 마음도...
아이구 옆구리야.

(2004년 1월 20일 밤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