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전교수님의 워크샵이 끝나고 간단한(?) 식사를 했다. 음식점에 들어가기 전에는 가볍게 날리던 눈발이 3시간가량 지난후에는 엄청나게 내려서 10센티가량의 눈이 쌓이게 되었다. 여전히 눈이 심하게 내리고 있는 상황이어서 우리는 엄청난 눈발을 맞아가며 지하철 역까지 걸어가야 했다.

만약 멋진 남자친구라도 있어서 함께 걸었다면 매우 낭만적이었을 수도 있었을 길이었지만, 전혀 그런 상황도 아닌데다가 엄청난 눈발에 우리는 그저 말그대로 눈길을 헤쳐나가야만 했다. 연대앞에 있는 건널목을 지나 독수리빌딩 근처에 다다라서 나는 앞에 있는 언니들과 약간의 거리를 유지한채 혼자 뒤뚱뒤뚱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고는 나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탄젠트 15도 정도 되는 길이 60센티가량의 내리막길. 다른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지나는 길이었지만, 평소 워낙 뛰어나게 안좋은 운동신경의 소유자였던 나는 살짝 겁이 났고 순간적으로 어느 방향이 가장 안전할 것인지를 판단 했다. 요철이 있는 보도블럭을 밟는 것이 나의 결론 이었다. 하지만 그 보도블럭이 가로방향이 아닌 세로방향이었다는 사실을 나는 그 찰나의 순간에 깨닿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세로모양의 보도블럭을 밟자마자 공중으로 20센티정도 날아올랐고, 순간 높아진 위치에너지를 모두 둔부로 견뎌내야 했다. 순간 엉덩이부근에 통증과 또한 바닥의 한기가 느껴졌다. 나를 발견한 앞에가던 언니들이 바닥이 차다며 어서 일어나라며 나를 부축해줬고, 나는 엉덩이에 느껴지는 엄청난 위치에너지를 삭히려 잠시 멍하게 신촌한가운데 서있었다.

정말 눈물이 날정도로 아팠지만, 얼굴이 팔리기도 했다. 하지만, 아픈
것이 더 컸다. 그 이유인 즉슨 아픔이 크더라도 얼굴이 팔리는게 더 크다면 그 순간 만큼은 덜 아프기 마련인데, 평소 나는 자주자주 길에서 넘어지기 때문에 왠만한 팔림정도는 견뎌내는 철면피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통증은 열에너지로 바뀌어 비교적 따뜻하다고 느끼며 역으로 왔다. 마침 군에서 휴가나온 고등학교 선배를 잠깐 만나게 되어 집에 좀 늦게 들어가게 되었다. 지루하게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길.

나의 홈그라운드. 광명역에 내리면 집까지는 10분정도 걸어가야 한
다. 선배를 만나 잠깐 몸도 녹인데다가 지하철에서 지리한 시간들을 보낸지라 이미 둔부에는 아픔따윈 없었고, 나는 잠시 거만한 생각이 들었나보다. 내 맞은편에서 오던 한 아주머니께서 반질반질하게 잘 얼어버린 길을 주머니에 손을 넣으신채 종종걷다가 쭉~ 미끄러지고 종종걷다가 쭉~ 미끄러지는 패턴으로 걸어오고 계셨다.

나는 그게 꽤나 재미있어 보였다. 그리고 저렇게 가면 집에도 빨리 갈 수 있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착각도 잠시. 종종종 걷다가 쭉~미끄러질때. 나는 정말 미끄러져 버린 것이다. 이번에는 엉덩이가 아닌 무릎. 아... 무릎 깨지는줄 알았다.

난 정말 울고싶은 마음 뿐이었다. 하루에 두번씩이나 길에서 넘어지다니. 혹자는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 아.. 눈오는날 구두신고 나가면 넘어질 수도 있겠구나... 하지만... 나는 마틴을 신고 있었다. 물론 나같은 경우 비오는날 구두신고 자주 넘어져본 사람으로 구두가 얼마나 마찰력이 작은지 알고 있지만, 마틴은 비교적 마찰이 큰편이다. 하지만 조심하시라. 신발사이에 눈이 들어가고 그게 살짝 얼면 스케이트 못지 않은 스릴을 맛볼 수 있으리라.

계속 넘어지는 이야기만 하니, 왜 이 글의 제목이 That's not fair.인지 궁금해 하는 사람이 있을 법도 하다.

이는 나의 사사로운 컴플렉스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나의 운동신경에 대한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나는 보기에는 꽤나 날렵해 보인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 편인데, 사실 날렵과는 전혀 거리가 멀다. 내 컴플렉스가 운동을 못하는 것이라고 하면 그게 뭐 컴플렉스가 될 것 까지 있냐고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사람이 도가 지나치면 안되는 법. 나의 운동신경은 가히 놀랄만 하다.
우선 내가 중고등학교 시절 가장 싫어하던 것은 운동회와 체육대회였다. 체육대회는 운동을 못하면 응원만 하면 되기에 그저 그렇기도 했는데, 운동회는 모두 필히 달리기를 해야했기 때문에, 정말 싫어했다. 나는 항상 출발선상에 서면 나의 달리기실력이 부끄러워 그냥 가다 넘어져버릴까 하고 생각하곤 했다. 아무튼, 무슨 운동을 배워보려 해도 남들보다 힘든데다가 항상 나머지반을 해야하기에, 많이 시도해보지 않은 것과 그로인한 체력저하로 나는 운동신경과 운동능력 모두 저하된 상태가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나도 체력장에서 2급을 받은 적이 있었으니! 바로 고등학교 2학년 당시 공던지기에서 유연성으로 종목이 바뀌었을 때였다. 그렇다! 나는 유연성 하나는 좋았던 것이다. 나는 항상 나의 유연함을 부러워 하는 아해들에게 운동신경이 나쁘니 유연성이라도 좋아야 넘어져도 안다치지 않겠냐고 주장하곤 했다.

나는 항상 이부분을 생각하면 하나님이 참 공평하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도 그럴것이 나는 나쁜 운동신경과 덤벙거리는 걸음걸이로 눈 비오는날은 물론 평소에도 돌부리에 잘 걸리고 잘 넘어지는 편이기에, 보통 사람 같았으면 벌써 인대가 몇번은 늘어나고, 발목신세도 지고 했어야 하는 상황이지만, 나는 그렇게 심하게 자주 넘어졌음에도 상해를 입어본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난 추운날에는 넘어지면 유연성도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촌에서 넘어졌을땐 그나마 괜찮았는데, 집앞에서 넘어지고 집에 걸어오는데, 오른쪽 발목안쪽으로 통증이 느껴졌다. 얼마전 요가를 다니며 그렇게 연마해오던 발목이 아니던가. 충격은 무릎으로 받았는데, 왠 발목이 시려온단 말인가.

하나님께서 나에게 유연한 발목을 주셨지만, 결국은 눈길앞에 무릎꿇는 것을 보고 모든 것을 다 가지지 못한 것은 not fair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뛰어난 운동감각으로 날렵하게 몸을 피했다면.... 흑흑.... 발목에 발라놓은 파스느낌의 로션이 시원하고 또한 뜨겁다.
하지만 오늘의 교훈 not fair 한것이 자신의 노력으로 커버될 수 있는 부분이라면, fair하게 하면 되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발목을 좀더 연마하고, 타고난 운동신경은 없지만, 체력은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미루고 미뤄왔지만, 어서 운동을 시작해야겠다.

즉, 오늘의 교훈. 운동합시다 여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