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어제 광명역에서 집에 돌아가는 길에 또다시 넘어지지만 않았더라면, 이 테마로 짧은 글을 쓸까 했었는데, 길에서 넘어지는 사건이 워낙 충격적이었는지라 (물리적 충격이..) 잠시 잊었었는데, 다시 생각나서 올립니다.


11시경 7호선을 타고 집에 돌아가는길. 저는 의자옆 기둥을 붙잡고 문쪽을 향해 서서 문자를 보내며 집에 가던 중이었습니다. 그 전부터 제 뒤에는 한 연인이 있었고, 그중 남자의 손이 제 얼굴 근처로 와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기는 하였습니다. 그런데 잠시후. 누군가 제등뒤로 기대는 것이 아닙니까. 실로 충격이었습니다. 사람이 조금 많기는 하였기로, 그렇게 몸무게의 14/25가량을 기대는 것이 어디 가당키나 하단 말입니까.

전 친밀감의 표시를 넘어서는 영역 가까이로 침범한 사람이 대체 누구인지 보기위해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남자였다면, 상반된 두가지의 기분이 교차했었을 테지만, (if.. if not... 상상에 맡기겠음 ex) 잘생겼거나, 아니거나... 변태이거나, 아니거나 ) 그것은 여자였습니다. 뒤를 돌아서 목소리만 듣기에는 분명 멀쩡해보였는데, 아마도 연말이라 술에 취한듯 보였습니다. 아주 밝은 불빛아래서 보았을때에, 얼굴색이 멀쩡한 것으로 보아 저는 속으로, 남자친구 앞이라 취한척 하는게일 것이라는 생각도 또한 들었습니다.

지하철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아 내리면 되기에, 저는 흥미진진하게 지하철 유리를 통해 그들의 모습을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랜 솔로생활로 피폐해진 저의 시각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더니, 정말 가관이더군요. 이미 자신이 술에 취한 사실을 주위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알렸지만, 공공장소에서 그렇게 엥겨야만 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생각했지요. 저여자가 단수가 높구나.
사실 평소엔 얌전한 여자가 술에 취하는등 일탈적인 상황에서 의외의 모습을 보인다는 것은 남자가 생각하기에, 귀엽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는 생각입니다. 뭐 비록 남자가 여자를 보는 것이 아니더라도, 가끔 술취한 친구들의 엽기행각이 귀엽게 느껴지는 것은 인지상정이니깐 말입니다.

여자의 언행을 가만히 살펴보니, 남자의 집은 중간에 내려서 1호선으로 갈아타야 하고, 여자의 집은 그냥 7호선인듯 하였습니. (내릴때보니 나와 같은데서 내리더라.) 이미 시간이 꽤 늦은지라 남자는 은근 여자를 데려다주고 자기가 돌아와서 1호선을 갈아탈 수 있을까를 염려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자의 언행으로 보아 은근 자신을 집까지 바래다 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그 표현이랄 것이 자기몸도 못가누는척 이사람 저사람한테 기대기. 집에 잘 갈 수 있냐는 남자의 물음에 자기는 집하나는 잘 찾아간다고 대답하는 동시에, 몬일만 안생기면 잘들어가~ 라는 토달기.

그 둘을 가만히 보면서, 저는 저 남자가 이여자를 집에 안데려다주고, 나중에 궁시렁소리좀 듣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나 눈치가 없기에 저렇게 온몸으로 표현하는데도 모를까.... 여자의 말중에 우스웠던 것은 "오빤 복받은거야, 세상에 나처럼 이렇게 속눈썹 긴여자가 또 있는 줄 알아? 1.5센티 이상이면 긴건데, 난 1.5센티니깐 얼마나 긴건데~ " 그래서 티나게 뒤돌아보면서까지 유심히 봤습니다. 마스카라를 했지만, 1.5센티 안되는 것 같았습니다. 아니, 저렇게 온갖 귀엽게 보일만한 행동을 다하고, 차마 집까지 데려다 달라고 말은 못하면서, 은근 슬쩍 남자를 떠보고 있는데, 남자는 그것을 무시하는 것인지, 아얘 눈치가 없는 것인지 여자를 역에만 내려주고 그냥 돌아가더군요.

솔직히 예전에 남자친구가 있었을 때에 저것과 유사한 경우에 저는 대놓고 화낸적이 있었거든요. 저여자의 성격이 저같지 않기를 바랬습니다. 아무리 남자가 화성에서 오고 여자가 금성에서 왔다손 치더라도, 눈치가 빠르면 절에서도 고길 얻어먹는다고, 그 남자는 절에서 나물 얻어먹기도 글렀더군요.

어찌되었건, 아까 잠시 언급했듯이 여자는 저와 같은 곳에서 내렸고, 저는 그여자의 걸음걸이를 주시했습니다. 뭐 별로 술냄새도 안나고 얼굴도 멀쩡했지만, 약간 취하기는 했는지 살짝 비틀비틀 하긴 하더군요. 그래도 취하긴 했나보다. 하지만 전 곧 생각을 바꿨습니다. 아니 그 잔잔히 잘만가는 지하철에선 가만히 서있지도 못하던 여자가 어쩜 저리 잘걸을까. 그녀는 지하철에서 자기옆에 있던 사람들이 같이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연기를 하고 있던 것일 겝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아까 자기가 한 행동이 있는데, 너무 멀쩡히 나오면 사람들이 다 웃기다고 생각할테니 그럴만한 여지를 줄여놓은 게지요 .하지만 그러한 연기를 해본 경험자들은 압니다. (꼭 술취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친구와 전화통화하며 피곤해 죽겠다느니 말을 해놓고, 성큼 성큼 계단을 두개씩 올라가고 그러기는 좀 우습지 않습니까. ㅎㅎ) 그것이 거짓 나부랭이라는 것을 .... 그리고 잠시 생각해봅니다. 여자의 감정이 새해첫날 부터 토라지겠구나. 긴 속눈썹의 그녀가 맘아파하겠구나.



원래는 글 제목을 "남자들은 여자의 투정을 알아야만 한다"라고 하려고 했으나, 그러한 의도로 글을 쓰기엔 그들의 실제 속내와 얼마만큼 삐졌는지 알수 없으니 (그 여자 성격이 좀 괴팍하여 새해를 맞이하여 대판 싸웠다면, 저 주제와 저의 상황 분석이 탁월 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요 ), 그냥 에피소드 하나와 그것을 관찰한 저의 생각들을 소개하는 정도로 이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