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분들이 읽어보시면 좋으실 것 같아서 이대법대 법사학 교실 홈페이지에서 홍기원님께서 써주신 글의 일부를 발췌 했습니다....




내가 국민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웅변대회라는 게 있었는데, 거기 출전해서 입상한 친구들이 조회시간에 전교생이 모인 운동장 앞 연단에 올라가 우렁찬 목소리로 "저 홍길동은 여러분 앞에 소리 높여 주장합니다!" 하고 두 손을 번갈아 앞으로 뻗는 모습을 간혹 구경할 수 있었다. 요즘도 초등학교에 이런 웅변대회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웅변학원이란 게 있어서 여러 사람 앞에서 말 잘 못하는 어린이들이 이 곳에서 화술을 배우기도 한다.

그리이스, 로마 시대에도 웅변이란 게 있었다. 이 시대의 웅변(oratio)은 정치가와 법률가들의 몫이었다. 이들이 민회나 상원 또는 법정에서 명징한 논리와 화려한 수사를 동원하여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피력하거나 특정인을 변호 또는 비난할 때의 연설을 '오라티오'라 했던 것이다. 이 시대에 웅변은 정치가로서 또는 법률가로서 성공하는 길 중의 하나였고, 학교교육은 웅변 잘하는 젊은이를 양성하는 과정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당시 유명한 정치가, 학자들이 각자 웅변술에 관한 저서를 써냈던 것도 위와 같은 배경에서였다. 그 중 대표작으로 우리는 키케로(106-43 BC)의 [웅변가론](De Oratore)과 [웅변론 체계](Partitiones oratoriae), 그리고 퀸틸리아누스(35-95 AD)의 [웅변론](Institutia oratoria)을 들 수 있다. 그러니 만약 제대로 웅변을 하고 싶다면 이들이 전개해 놓은 웅변론에 따라 자신의 글쓰기와 말하기를 연습해 보아도 좋을 것이다.

우리가 수업시간에 하는 발표도 웅변적이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발표문을 준비하고 그에 따라 수업시간에 교수님과 학우들 앞에서 자신이 공부한 바를 십분 전달하기 위해서는 발표가 웅변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혹시 도움이 될까 하여 위 퀸틸리아누스의 [웅변론] 중 몇 구절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퀸틸리아누스의 [웅변론] 중 몇 구절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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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오라티오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덕목을 지녀야 할 것이다. 즉 정확해야 하며, 분명해야 하며, 우아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1권 제5장)
"... omnis oratio tres habeat virtutes, ut emendata, ut dilucida, ut ornata sit."

1. 정확한 어휘구사
우리의 발표가 언어로 이루어지는 이상 그것은 분명 언어의 일반규칙을 준수해야 할 것이다. 퀸틸리아누스가 말하는 바 '정확'이라고 하는 것도 사실 문법적인 차원에서 설명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글에서 모든 문법규칙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는 것은 어려우므로, 다만 정확한 어휘구사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정확한 개념의 파악이 중요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법률언어 중 제일 중요한 것은 아무래도 명사일 듯하다. 예를 들어, 우리 민법 제1조 "民事에 關하여 法律에 規定이 없으면 慣習法에 依하고 慣習法이 없으면 條理에 依한다"는 규정의 의의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도 여기서 말하는 '민사'란 무엇인지, '법률', '규정', '관습법', '조리' 등의 명사들이 각각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용어들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법률용어사전을 참조하길 권한다. 외국어를 습득할 때 사전 찾는 것을 귀찮아 하면 안 되듯이, 법학에 입문할 때 법률용어사전 들춰보기를 게을리하면 안 된다.) 이러한 체언에 대한 의미파악이 일단락되면 그 다음으로는 '관하여', '없으면', '의하고' 등 용언에 대한 의미파악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법률언어 중 자신의 주제와 관련된 이러한 용어들에 대한 정확한 개념파악은 좋은 발표를 하기 위한 필요조건 중의 하나인 것이다.

2. 분명한 의사전달
자신이 정확한 어휘구사를 한다 해서 이것이 곧 좋은 발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타인에게 요령 있게 전달되기 위해서는 의사표현이 분명해야 한다는 또 하나의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분명'이 내포하는 의미는 다양하겠지만, 나는 무엇보다 '의사전달은 간결해야 한다'는 의미로 새기고 싶다. 발표라고 하는 것은 제한된 시간 내에 자신이 공부한 바를 타인에게 말로써 전달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이 공부한 바가 아무리 많다 할지라도 그것을 간추려서 제한된 시간 내에 청중에게 핵심을 전달할 줄 아는 요령이 필요하다. 사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무한하고 또 자신의 긴 발표를 청중이 참고 끝까지 들을 수 있는 인내력이 있다 하더라도 발표는 '장황하게' 이루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가 흔히 '얘기가 옆으로 샜다"고 말하는 것은 의사전달이 간결하게, 즉 분명하게 이루어지지 않았을 경우를 말한다. 이러한 잘못을 피하기 위해서는 발표문을 준비할 때 먼저 전체발표의 줄거리를 대강 짜보는 것이 한 방법이 될 것이다.

3. 우아한 의사표현
문장 또는 표현이라고 하는 것이 너무 무미건조하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주장에 힘을 실어 주기 위해서 적절히 문장 또는 표현을 다듬을 필요가 있다. 근거를 대기 위해서 적당한 예를 든다든지, 자신의 생각에 권위를 실어주기 위해 유명한 학자나 저서의 문구를 인용한다든지 하는 것도 이러한 장식적인 효과를 위한 것이라 하겠다. 그런데 주의할 것은 우아함이라고 하는 것이 미사여구를 의미한다고 생각하면 잘못이라는 점이다. 오히려 과다한 미사여구는 우아한 의사표현을 방해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의사표현에 있어서의 우아함이라고 하는 것은 서론에서 결론에 이르기까지 논지를 매끄럽게 이끌어 나갈 줄 아는 데서 얻어지는 덕목이라 하겠다. 수사학이 바로 이러한 방법을 탐구하는 분과라 할 수 있는데, 관심이 있다면 도서관에서 관련서적을 열람해 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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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흥미로울 것 같아서 택한 주제가 막상 공부해 보니까 준비하기에 어려운 주제일 수도 있다. 이 때 절대 후회하거나 멈추어서는 안 된다. 여러분이 비록 아직까지는 학문적 방법에 익숙하지 않을 수는 있어도, 이 세상에 여러분의 지적 능력으로 해결하지 못할 문제는 없기 때문이다. 아니면 최소한 이를 위해 우리의 이성을 훈련시킬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런 이유로 퀸틸리아누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우리는 주제가 어렵다는 것을 핑계로 우리의 게으름을 감추곤 한다." (제1권 제12장) (의역)
"Difficultatis patrocinia praeteximus segnitiae."